마땅히 해야할 바를 외면해선 안된다
어린아이가 위태로운 때를 당하면, 그의 부모로서는 그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어떠한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물불에 빠지는 위험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강구할 뿐이요, 반드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여,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곳을 꼭 가려고 할 때, 차가 있으면 차를 타고 갈 것이고, 차가 없으면 말을 타고 갈 것이고, 말이 없으면 도보(徒步)로 달려갈 것이고, 앉은뱅이일 경우에는 포복(匍匐)을 해서라도 갈 것이다. 일단 간다고 마음먹었다면 어찌 끝내 못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 시기가, 백성이 한창 고난에 빠져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형편인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핑계하고 모르는 체하니 어찌 옳겠는가? 그들의 처사는 역시 지엽(枝葉)만 다루고 있을 뿐이므로 근주(根株, 본질적인 것)는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쇠붙이를 주조하는 일과도 같다. 시원찮은 불꽃으로 겉만 스치니, 생판 생동(生銅)을 어떻게 둥그렇게 또는 편평하게 두드려 만들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이는 큰 불 속에 집어 넣어 빨갛게 달구어야만 쇠가 녹아 내리게 될 것이다.
천지(天地)가 생리(生理)로써 만물을 만들어냈으니, 순리대로 생성(生成)하는 것은 곧 천지의 본심(本心)이다. 그러나 나쁜 폐단이 쌓이는 것은 곧 사람이 올바른 방법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쁜 폐단이 그 가운데서 생겼으니 변통해 나가는 계책도 반드시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닭을 기르는데 닭이 잘 번식되지 않자, 살펴보니 돌멩이를 던져서 닭을 상한다든지, 쥐와 너구리가 덮쳐 잡아먹는다든지, 사료를 정성껏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닭 기르는 늙은이를 찾아가 보면 그렇지 않다. 먹여 기르는 것이나 다른 짐승들로부터 방호(防護)하는 것이 다 그 계책이 있다. 그러니 어째서 닭이 잘 자라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정치하는 데 있어 세금을 각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닭이 돌멩이를 맞아 상해도 돌보지 않는 것과 같고, 탐관오리를 징계하지 않는 것은 쥐나 너구리가 마음대로 잡아먹게 두는 것과 같고, 수재나 한재에도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 것은 즉 사료를 아껴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어찌 방법이 없다고 하겠는가?
성인(聖人)이 편히 한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정처없이 천하를 주유했던 것은, 뜻이 그 도(道)를 행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도라고 하는가? 그 요점은 온 천하에 궁한 백성이 없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만 제 살 곳을 얻지 못하면, 자신이 마치 저자(市, 장터)에서 매를 맞은 것처럼 부끄럽게 여긴다(一夫不得其所若撻于市).” 하였으니, 하물며 한 역내(域內)에서 폐해를 받음에랴, 슬프다!
-이익(李瀷, 1681~1763), '증구(拯捄)', 『성호사설(星湖僿說) 제7권/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이동환 임정기 장순범 정기태 정연탁 (공역) ┃ 1978
**옮긴이 주:
1.증구(拯捄): 건질 증, 담을 구, 즉 '도움을 주어 구제함'의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글의 내용으로 짐작컨대 그 대상은 어찌할 여력이 없거나 또는 방도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힘들고 소외된 이들로 헤아려진다.
2. 약달우시(若撻于市): "~장터 거리에서 매맞은 것처럼 부끄럽게 여긴다." 이 글의 출전은 주희의 근사록 위학편이다. 소학 외편에서도 이 내용 전체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윤과 안연은 대현인이다. 이윤은 그의 임금을 요순과 같은 현군이되도록 보필하지 못하며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그가 안주할 곳을 얻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기되 마치 자신이 시장의 많은 사람 앞에서 매맞는 것처럼 여겼다. 안연은 갑에게서 성낸 일을 을이나 병에게 옮기지 않았으며 같은 허물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하여 짓지 않으며 석 달 동안을 계속하여 인(仁)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뜻은 이윤의 뜻한 바로 하며 학문은 안연의 배운 바로 한다면 이윤이나 안연보다 나으면 성인이 될 것이고 그들과 같게 되면 현인니 될 것이고 미치지 못하여도 또한 어진 이름을 잃지 아니할 것이다."(근사록 제2권 위학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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