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은 자신을 희생한다
사람이 병이 들려면 반드시 고기도 맛있지 않고, 나라가 망하려면 반드시 충성(忠誠)으로 간하는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吳) 나라가 망할 때에 먼저 공손성(公孫聖)을 죽였고, 백제(百濟)가 망할 때에 먼저 성충(成忠)을 죽였던 것이다.
그 임금을 간할 때는 나타나지 않은 자취를 미리 말하는 것인데, 임금은 어두워 앞을 내다보지 못하므로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죽이고서도 애석히 여기지 않는다. 후세 사람들이 볼 때에는 괴상히 여겨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형세와 광경이 반드시 시비의 참된 것에 미혹된 바가 있은 것이다.
사가(史家,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이 말한 것은 다만 한 편의 의론만을 내세운 것이요, 그 동(東)을 끌어대고 서(西)에 번쩍하며 참된 것을 현란시키는 허다한 사실에 대하여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임금이 비록 혼암(昏闇, 성정이 어리석고 못나서 사리에 어두움)하더라도 어찌 나라를 보존하고 자손의 장구한 영화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를 취하고 저를 버린 것은 그 선택을 잘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는 앞수레가 엎어졌는데도 뒷수레가 오히려 경계하지 않은 것이니, 후세의 임금들이 정밀히 살피지 않고 옛 사기(史記, 역사의 기록)를 인거(引據, 인용하여 근거로 삼음)하여 문득 탄식을 하면서도 그 몸이 엎어진 앞자취를 밟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이다.
개인의 가정에서도 또한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 개를 기르는 것은 도둑을 방지하기 위함이니, 개가 짖는 것은 사사로운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밤중에 개 짖는 소리가 나면 주인이 나와 살펴보고 아무 형적도 없으면 개에게 꾸중하지 않는 자가 없다. 사람은 비록 알지 못하나 개는 홀로 본 것이 있으므로, 사람이 꾸중하여도 오히려 그치지 않고 짖어대면, 또 차고 때리기까지 하는데, 조용히 생각하여 개를 따라가서 살펴보면 그 형적을 거의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내가 매양 경험해 보건대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에 공손성(公孫聖)과 성충(成忠)이 죽임을 당한 것도 족히 괴상할 것이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충신이 자신을 희생함이 족히 나라를 보존하지 못하고 한갓 뒷사람의 슬픔만 자아내게 한다.”는 말이 있으니, 생각이 이에 미치매 목이 멜 뿐이다.
※[역자 주]
1. 공손성(公孫聖) : 춘추 때 오(吳) 나라의 충신.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제(齊) 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다가 고소대(姑蘇臺)에 들러 잠시 쉬는데, 깜박 조는 사이에 꿈을 꾸었다. 부차가 공손성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자, 공손성은, “대왕께서는 군사행동을 중지하시고 덕을 닦으십시오. 그리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죄하십시오. 그러면 나라와 몸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오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무사(武士)를 시켜 쳐 죽였다. 《吳越春秋 夫差內傳》
2. 성충(成忠) : 백제(百濟)의 충신. 좌평(佐平)으로 있으면서 왕이 음탕함을 여러 번 간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최후로 “만일 적군이 침입하면 육군은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백마구(白馬口)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三國史記》
-이익(李瀷, 1681~1763), '충신은 자신을 희생한다(忠臣殺身 충신살신)',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1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지상 (역) ┃ 1978
"우리는 반성하기를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 「Man Against Mass Society (1952)」-
"인류에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할 때 발생한다....인류의 역사에서 진짜 다툼은 기득권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벌어져왔다...문명의 쇠망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모순에 기인한다."- 아놀드 J.토인비 (1889~1975),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1934-1961)」-
"그는 비록 그가 예전에 저질렀던 실수와 그로 인한 불행에 대해서 미리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게도 또 다시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인생을 반복하고 말았다. 어둠의 지배자는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우스펜스키(P.D.Ouspensky 1878~1947), '루디레볼빈의 이중비극', 『이반 오소킨의 이상한 인생(Strange Life of Ivan Oso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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