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사람된 삶의 우선순위

풀 나무 새 짐승 등의 사물됨과 여러 사람들의 인간됨의 성격은 그들이 사는데 있어서는 비록 서로가 다르나 죽는데 있어서는 서로 같다. 한결같이 썩어문들어져 결국은 그 존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 중에는 성현(聖賢, 성인과 현인)이란 사람이 있는데, 역시 그들도 세상에 살고 있다가 죽어버린다. 그러나 풀 나무 새 짐승 및 보통 사람들과 유독 다른 점은 비록 몸은 죽어도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갈수록 더욱 그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들이 성인과 현인이라 불리게 되는 까닭은, 수신(身, 마음과 몸을 닦음)하여 덕행을 실천하고(修之於身 수지어신)중요한 일에 종사하여 공업(공적인 업적)을 이루고(施之於事 시지어사)또 그것을 말로 표현하여 글로 적어놓았기(見之於言 견지어언) 때문이다이것이 세상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후세에도 그 존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세 가지 근거인 것이다.


수신(身)을 한 사람은 얻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修於身者 無所不獲 수어신자 무소불획). 공적이나 사적으로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러한 일들을 말로 표현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잘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 종사한다면 굳이 말로 표현하여 글로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시경>과 <서경> 그리고 <사기>에 전해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어찌 반드시 모두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고 하겠는가? 수신(身)을 잘 한다면 중요한 일에 종사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여 글로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을 보면 정사(政事)에 유능했던 사람도 있고 언어에 유능했던 사람도 있었다. 안회(顔回)같은 사람은 누추히고 궁벽한 골목에 살면서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태연하게 팔베개를 하고 그냥 누워잤을 뿐이었다. 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적에도 하루 종일 침묵을 지키어 마치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같았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여 감히 그의 수준에 미치기를 바라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또한 후세에 수 백 수 천년이 지나서도 역시 그에게 미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이름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은 진실로 중요한 일에 종사한 까닭이 아니니, 하물며 표현된 말과 글 때문이었겠는가? 


내가 반고의 <한서> 예문지와 <당서>의 사고서목을 읽어 보았다. 거기에 열거되어 있는 것은 삼대로부터 시작하여 진한 이래의 것이다. 책을 저술한 사람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백편에 이르고, 적은 사람도 3,40편이나 되며 그 사람들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저술은 흩어져 없어지고 닳아 없어져서 백분의 일 이도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나는 속으로 슬퍼하였다. 그 사람들의 문장은 아름답고 말의 표현은 훌륭하기 그지 없지만, 그것들은 초목의 아름다운 꽃이 바람에 날리고 새나 짐승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귀를 스쳐지나간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들이 마음과 힘을 쓴 각고의 수고로움이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에 급급했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누구나 나름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기에 급급하지만, 예외없이 필연코 죽고 만다. 다만 그 죽음의 시기가 늦거나 빠를 뿐이다. 결국은 초목(草木)과 조수(鳥獸)와 인간들, 이 셋이 전부 다 마찬가지로 죽어 멸실됨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말의 표현을 믿을 수 없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은 것이다. 


요즈음의 학자들은 모두가 옛 성현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남긴 것만을 흠모하여 일생에 부지런히 힘써 글을 쓰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슬퍼할만한 일인 것이다.


동양의 서군은 젊어서부터 나에게 배워 글을 짓는 일로 사람들에게 약간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내 문하를 떠나가서 여러 선비들과 함께 예부의 시험을 보아 높은 등급으로 급제하였다. 이로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고 그의 문장은 날로 발전하여 물이 솟아오르고 산이 우뚝 솟은 듯이 남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왕성한 기운을 꺾어서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과 성찰에 힘써 수신(身)하도록 권면해 주려 한다. 그래서 그가 귀향하는 길에 이런 말들을 일러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도 본시 글을 짓기를 좋아하는 자이므로, 나 또한 이를 근거로 하여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한다.(개인적인 이해를 돕기위해 번역글을 옮기면서 문장과 문맥을 약간 다듬다)


-구양수(歐陽,1007~1072 송대 시인, 학자, 당송팔대가), '송서무당남귀서(送徐無黨南歸序)',『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원글출처: 오세주의 한시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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