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훼(原毁):비방과 훼방의 근원
옛날의 군자들은 자신을 책함은 두루 엄격하고 치밀하며(其責己也重以周기책기야중이주), 남을 대함은 가볍고 간략하였다.(其待人也輕以約 기대인야경이약), 엄격하고 철저하기 때문에 태만하지 않고, 가볍고 간략한 것은 선(善)을 도모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듣건대, 옛사람 중에 순(舜)임금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 사람됨이 어질고 의로운 분(仁義人)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 군자들은 순임금이 순(舜)임금이 되신 이유를 살펴서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고 권면하여 이르기를, "저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이 이를 능히 잘 하셨다면, 어찌 나도 이를 능히 하지 못하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마음에 뜻을 두고, 순(舜)임금과 같지 않은 것을 버리고 마침내 순(舜)임금과 같은 데로 나아갔다.
또 듣건대, 옛 사람 중에 주공(周公)이란 분이 계신다. 그의 사람됨이 재주와 기예가 많은 분(多才與藝人)이라 한다. 그래서 옛 군자들은 주공이 주공(周公)이 된 이유를 찾아서 스스로 자기를 권면하여 이르기를 ‘저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인데, 주공(周公)이 이를 능히 잘 하셨다면, 어찌 나도 이를 능히 하지 못하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마음에 뜻을 두고, 주공과 같지 않은 것을 버리고 마침내 주공과 같은 데로 나아갔다.
그러나 순(舜)임금은 큰 성인(聖人)이어서 후세에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다. 주공(周公) 또한 큰 성인(聖人)이어서 후세에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다. 그때문에 옛 군자들은 마침내 말하기를, “순(舜)임금과 같지 못하고 주공(周公)과 같지 못함이 오직 나의 병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옛 군자들이 자기를 책함이 두루 엄격하고 치밀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남에 대해서 말하기를 “저 사람은 능히 이러한 점을 갖추고 있으니 충분히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될 만하고, 또 능히 이것을 잘하니 충분히 재주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하였다. 이처럼 그 한 가지 좋은 점만을 취하고 그외 다른 두 가지를 겸하여 요구하지 않았다. 남이 스스로를 새롭게 한 것만을 보았고, 지나간 허물과 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였다. 이는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를 행여 그 사람이 선(善)을 행한 이익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한 까닭이다.
한 가지 선행(善行)은 닦기가 쉽고 한 가지 재주는 능하기가 쉽다. 그래서 옛 군자들은 마침내 남에 대하여는 말하기를, “능히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충분하고, 능히 이것을 잘하니 이 또한 충분하다.”고 하였다. 이는 옛 군자들이 남을 대함이 가볍고 간략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군자(君子)들은 그렇지 않다. 남을 책함은 상세하고, 자기 몸을 책함은 작다. 즉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남이 하면 이유불문하고 불륜으로 여긴다. 상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善)을 행하기가 어렵고, 간략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善)을 취하여 실행함이 적다.
자기에게 선한 행실이 아직 없음에도 말하기를 “내 이것을 잘하니 이 또한 충분하다.”한다. 또 자기가 아직 능함이 있지 못한데도 이르기를, “내 이것을 능히 하니 이 또한 충분하다.”한다. 이처럼 밖으로는 남을 속이고 안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속여 조금도 얻음이 있지 못하고 그치고 만다. 이 또한 자기 몸을 대하는 것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는가?
남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저가 비록 이를 능히 하지만, 그 사람됨을 족히 칭찬할 것이 없고, 저가 비록 이것을 잘하나 그 쓰임에 있어서는 족히 칭찬할 것이 없다.”고 한다. 이처럼 한 가지만 들어서 나머지 열 가지를 따지지 않으며, 지나간 잘못만 따지고 남이 새롭게 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여,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를 행여 그 사람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니, 이는 남을 책함이 너무 상세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일러, ‘보통 사람(衆人)으로써 자신을 대하지 않고 성인(聖人)으로써 남에게 바란다.’는 것이다.(不以衆人待其身 而以聖人望於人불이중인대기신 이이성인망어인). 나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높임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 근원이 있다. 곧 태만함과 시기가 그것이다. 태만한 자는 능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지 못하고, 시기하는 자는 남이 닦는 것을 두려워 한다.
내가 일찌기 이를 시험하여 보았다. 사람들에게 시험삼아 말하기를, “아무개가 훌륭한 선비요, 아무개도 훌륭한 선비다.”라고 떠보았다. 이 말에 응하여 동조하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과 같은 편에 속하고 이해관계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원하여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그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유력하여 강한 자는 반드시 그 말에 노여움을 드러내고 유약한 자는 반드시 얼굴빛에 노여운 기색을 나타낸다.
또 말하기를 “아무개는 훌륭한 선비가 아니요, 아무개도 훌륭한 선비가 아니다.”라고 하니, 이 말에 응하여 동조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과 같은 편에 속하고 이해관계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원하여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그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유력하여 강한 자는 반드시 그 말에 기쁨을 표하고, 유약한 자는 반드시 얼굴빛에 기쁨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몸과 마음을 새롭게하여 행실을 바르게 세우면 비방이 일어나고, 덕이 높아지면 훼방이 오는 것이다.
아아! 슬프구나! 선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된 명예가 빛나기를 바라고, 의리와 도덕이 바르게 행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하략)
-한유(韓愈 768~824), '비방과 훼방의 근원 (原毁 원훼)' -
▲번역 참조한 책: 『한유산문선 SNUP 동서양의고전 9 』(한유 지음 , 오수형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사족: 원문과 비교 참조하고 그외 여러 번역글들을 여기저기서 표절하여 상당한 부분을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글의 맥락이 통하는 나름의 말로 의역하여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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