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字句)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을 기대할 수 없다
작가(作家)의 작문법(作文法)을 엿보고자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근기(根基, 기초基礎, 준칙)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자구(字句)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이 되기를 바라니, 어찌 될 수 있겠는가?
6월 26일에 유(愈 한유)는 이생(李生) 족하(足下)께 고하오. 그대가 보낸 편지는 문사(文辭)가 매우 뛰어난데도 묻는 태도가 어쩌면 이리도 겸손하고 공손하단 말이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누군들 그대에게 자신의 도(道)를 일러주려 하지 않겠소. 도덕의 수양이 머지않아 성취(成就)될 것인데, 하물며 도덕을 밖으로 표현하는 문장(其外之文)*이야 더 말할 게 있겠소. 그러나 나는 이른바 공자(孔子)의 문장(門牆, 문과 담벼락)만을 바라보고 그 집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니, 어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소. 비록 그러나 그대를 위해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소.
그대가 바로 고어(古語 옛글)에 말한 ‘입언자(立言者)*’이니, 그대의 행위와 그대의 기대가 옛날의 입언자와 매우 유사하고 근접하였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뜻이 남보다 뛰어나서 남들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데 있는지, 혹은 옛날 입언자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데 있는지 모르겠소.
남보다 뛰어나서 남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데 있다면 그대는 이미 남보다 뛰어나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소. 혹은 옛날 입언자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데 있다면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지도 말고, 권세(權勢, 벼슬)나 이록(利祿, 녹봉 祿俸,경제적 금전적 이해득실)에 유혹(誘惑)당하지도 말며, 뿌리를 배양(培養)하여 결실(結實)을 기다리고 등잔에 기름을 부어 빛이 밝아지기를 기다리시오. 뿌리가 무성한 나무는 그 열매가 풍성하고 기름을 부은 등잔은 빛이 밝아지듯이, 인의(仁義)가 있는 사람은 그 언론(言論)이 따뜻하고 부드럽다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이 있으니, 내가 지은 글이 입언자(立言者)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직 이르지 못하였는지를 나 자신이 모른다는 점이오. 비록 그렇다 해도 내가 문장을 학습(學習)한 지가 이미 20여 년이 되었소.
처음에는 삼대(三代)와 양한(兩漢)*의 글이 아니면 감히 보지 않고, 성인의 뜻이 아니면 감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소. 집에 있을 때는 다른 일은 모두 잊은 것 같았고 길을 갈 때는 다른 생각은 모두 잊은 것 같았으며, 엄숙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멍청하게 미로를 헤매는 것 같기도 하였소. 마음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손으로 글을 쓸 때는 오직 진부(陳腐)한 말을 제거하기만을 힘썼으니 참으로 어려웠고, 이 글을 남에게 보여줄 때는 남의 비난과 비웃음을 비난과 비웃음으로 알지 않았소.
몇 해를 이렇게 하면서 여전히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은 뒤에 비로소 고서(古書) 중에 순정(純正)한 것과 순정하지 못한 것, 비록 순정하지만 지극하지 못한 것이 흑백(黑白)처럼 분명하게 판별되었소. 순정하지 못한 것과 순정하지만 지극하지 못한 것들을 힘써 제거하고서야 서서히 터득되는 것이 있었소. 마음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손으로 글을 쓸 때 마치 물 흐르듯이 글이 내려갔소. 그러나 남들에게 보여줄 때에 남들이 비웃으면 나는 기뻐하고 남들이 칭찬하면 나는 근심하였으니, 이는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대의 색채'(時文의 色彩)가 남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오.
또 이렇게 몇 년을 계속한 뒤에 비로소 문장의 기세가 큰물처럼 세차게 흘러나왔소. 나는 또 문장이 난잡하게 될까 두려워,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평정한 마음으로 살펴서 모두 순정한 뒤에야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갔소. 비록 그렇다 해도 도덕과 학문을 함양(涵養)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인의(仁義)의 길을 걷고 시서(詩書)의 근원에서 헤엄치면서 이 목숨이 다하도록 그 길을 헤매지 않고 그 원류(源流)가 끊이지 않게 할 뿐이오.
기(氣)는 물과 같고 언(言, 文章)은 물 위에 떠 있는 부물(浮物 부유물)과 같으니, 물이 크면 크고 작은 부물이 모두 뜬다오. 기(氣)와 언(言)*의 관계도 이와 같아, 기(氣)가 성대하면 언(言, 語句)의 장단(長短)과 성운(聲韻)의 고하(高下)가 모두 알맞게 된다오. 비록 이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스스로 완성의 단계에 근접하였다고 할 수 있겠소. 비록 완성의 단계에 근접했다 하더라도 이 문장이 사람을 등용하는 자에게 어찌 인정을 받을 수 있겠소.
비록 그러나 남에게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찌 쓰이기를 기다리는 용기(用器, 그릇, 도구)와 같지 않겠소. 쓰고 버리는 것이 사람의 손에 달렸으니 말이오.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용심(用心, 마음씀씀이)에 도의(道義)가 있고 처신(處身)에 준칙(準則)이 있어서, 쓰임을 받으면 도(道)를 사람들에게 베풀고, 버림을 받으면 도(道)를 문도(門徒,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 전하고, 문장(文章)으로 전하여 후세에 법(法)이 되게 한다오. 이와 같다면 즐거워할 만하겠소. 즐거워할 만하지 않겠소.
고문(古文, 옛글)에 뜻을 둔 자가 드무니, 이는 고문에 뜻을 두면 반드시 지금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기 때문이오. 나는 고문에 뜻을 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기뻐하면서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슬퍼하였소. 그런데도 자주 그런 사람을 칭찬한 것은 그 사람을 권면하기 위한 것이었지, 감히 칭찬할 만하면 칭찬하고 비난할 만하면 비난한 것이 아니었소. 내게 묻는 자가 많았으나, 대답해준 경우가 없었는데, 그대의 말은 공리(功利 뭔가 목적을 두고 명성과 이익을 바라는 것)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애오라지(부족하나마) 그대를 위해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오.
※[역주]
1. 답이익서(答李翊書) : 이익(李翊)은 한유(韓愈)의 추천으로 진사과에 합격한 韓門弟子의 한 사람이다. 정원(貞元) 18년(802)에 한유가 부고관(副考官) 육참 (陸傪)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익 등 열 사람을 추천한 일이 있는데, 그 해 과거(科擧)에 이익이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다. 본서 권3에 실린 〈與祠部陸員外書〉에 자세히 보인다. 이 편지는 이익이 진사과에 급제하기 1년 전인 정원 17년에 보낸 것이다.
2. 기외지문(其外之文) : 도덕을 밖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란 말이다. 한유(韓愈)는 문장을 도덕 표현의 수단으로 여겼다.
3. 입언(立言) : 글을 지어 학설이나 사상의 체계를 세움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4년에 “최상은 덕행(德行)을 수립(樹立)함이고, 그 다음은 공업(功業)을 수립함이고, 그 다음은 글을 지어 학술과 사상의 체계를 세움이다.[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란 말이 보인다.
4.삼대(三代)와 양한(兩漢): 삼대(三代)는 하夏‧ 상商‧ 주周이다. 三代의 글은 ≪尙書≫‧≪詩經≫‧≪春秋≫ 등을 이른다. 양한(兩漢)은 西漢과 東漢이다. 兩漢의 글은 사마천 司馬遷‧ 양웅揚雄‧ 사마상여司馬相如 등의 글을 이른다.
5. 기(氣)와 언(言), 도(道)와 문(文) : 한유(韓愈)는 물과 부물(浮物)을 들어 다시 道와 文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中國文學에 있어 氣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다. 한유는 도덕의 수양이 풍부하여 어떤 사물이라도 자유로이 처리할 수 있는 힘을 ‘氣’로 본 것이다. 물이 풍부하면 모든 물건을 띄우듯이 도덕의 수양이 풍부하면 모든 사물을 자유로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유(韓愈, 한퇴지韓退之 768~824), '이익에게 답한 편지(答李翊書)',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원글출처: 전통문화연구회/동양종합고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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