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풍숙서(答馮宿書)나의 허물을 일러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
편지를 보내어 나의 과오를 일러주셨으니, 나에 대한 우정(友情)이 지극한 그대가 아니라면 내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벗 사이의 도리가 끊어진 지 오래여서, 서로 바른말로 충고(忠告)하거나 도덕과 학문을 서로 권면(勸勉)하는 일이 없는데, 나는 무슨 행운으로 그대 같은 벗을 만난 것입니까?
나는 세속 사람들이 귀가 있으면서도 자기의 허물을 듣지 못하는 것을 항상 딱하게 여기면서 나도 자신의 허물을 듣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오늘 이후로는 그대에게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족하(足下)는 나와 사귄 지 오래이니, 내가 지키는 바는 족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내가 경사(京師, 수도)에 있을 때에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들의 비방이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였는데, 그때 족하께서 나와 거처(居處)하며 아침저녁으로 출입(出入)과 기거(起居)를 함께하였으니, 족하께서도 나에게 선량(善良)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러나 물러나와 생각해보니, 비록 하늘에게 죄를 얻을 만한 일은 없었으나 사람들에게 죄를 얻을 만한 일은 있었습니다. 내가 경성(京城)에 있는 1년 동안 한 번도 귀인(貴人,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에 찾아간 적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따르는 자들을 나는 깔본 것이며,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은 어울려 교유(交遊)하고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은 비록 나의 집에 찾아와도 그와 한 자리에 앉아 말을 나눈 적이 없었으니, 이런 나의 행위가 어찌 남의 비방을 부르기에만 충분할 뿐이었겠습니까? 남에게 주륙(誅戮, 법으로 죄를 다스려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면 몸이 떨리고 마음이 섬뜩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온 뒤로는 자신을 억제하고 자신을 낮추어 비록 불초(不肖)한 사람이 찾아와도 감히 얼굴에 업신여기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는데, 하물며 당시 사람들이 높이는 자이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을 걱정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여겼는데, 오히려 다시 이러쿵저러쿵할 줄은 몰랐습니다.
옛말에 “벗을 비방하는 뜬소문을 듣고도, 헐뜯는 자들이 말하는 그런 행위가 그 벗에게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아! 지금 세상에는 이런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군자는 소인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하여 그 조행(操行, 품행)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뜻을 굽히고 순종하며 안색을 살펴 비위를 맞추면서 그 뜻을 맞추지 못할까 두려워해도 오히려 이러쿵저러쿵하는 비난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는 운명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자로(子路, 공자의 제자)는 자기의 허물을 들으면 기뻐하였고, 하우(夏禹, 고대 하나라의 우임금)는 선언(善言, 선하고 바른 말)을 들으면 수레에서 내려 절을 하였다고 하였으며, 옛사람의 말에 “나에게 나의 허물을 일러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였으니, 바라건대 족하(足下)께서는 귀찮게 여기지 마시고 들리는 말이 있거든 반드시 일러주십시오. 나 또한 그대에게 보답할 것이고 감히 그대의 말을 빈말로 만들지 않을 것이며, 감히 잊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유(韓愈, 768~824), '풍숙(馮宿)에게 답한 편지(答馮宿書)',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卷5 /서(書) 08』-
▲원글출처: 전통문화연구회/동양고전종합DB
'고전산문(중국) > 한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훼(原毁):비방과 훼방의 근원 (0) | 2017.12.25 |
---|---|
모영전(毛穎傳) (0) | 2017.12.25 |
답유정부서(答劉正夫書):뛰어난 문장이란 (0) | 2017.12.25 |
의란조(猗蘭操) (0) | 2017.12.25 |
답위지생서(答尉遲生書): 문장(文章)이란 반드시 내면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한다 (0) | 2017.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