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오직 마음으로 거울을 삼을 뿐

눈이 남은 보지만 자신을 보진 못하니 밝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의 의관이 바르지 못하면 자기가 그것을 보지만, 자기가 자신의 의관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거울로 비추어 보아야 하니, 거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이켜 보게끔 한다. 지금 저 방에 등불을 밝히면 불빛이 반드시 새어나오지만 방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와서 밖에서 보아야만 드러나니, 보는 것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착한 것도 있고 착하지 못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다니듯 드러난다.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면 내일 사방의 이웃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또 그 다음날은 온 나라 사람이 알게 되고, 천하가 알게 되고 만세토록 알게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자기만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은, 저자에서 비단만 보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하여,보고도 보지 못한 것과 같다. - 유협(劉勰)의 〈신론(新論)〉에 이르기를, “제(齊)나라 저자에서 좋은 비단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도둑이 여러 사람들 속에서 그것을 훔쳤다. 관리가 잡아다가 신문을 하니 도둑이, ‘나는 다만 비단만 보았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져왔습니다.’고 대답했다.”라고 하였다. - 


나에게 한 가지 선행이 있으면 남이 반드시 그것을 칭찬하면서 나에게 뭇사람들이 칭찬한다고 알려주는 것은, 내가 남들이 나의 착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고서 기뻐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한 가지 착하지 못한 행동이 있으면 남이 반드시 그것을 욕하면서도 나에게 뭇 사람이 욕한다고 알려주는 이가 없는 것은, 내가 남들이 나의 착하지 못한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듣는 데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니, 종을 훔치면서 귀를 막는 것과 같다.  들려도 듣지 않는 것이다. - 《회남자(淮南子)》〈설산훈(說山訓)〉에, “범씨(范氏)가 패했을 때 그 적의 종을 훔쳐서 지고 달아나는 자가 있었다. 그런데 쨍그렁 소리가 나자 다른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 급히 자신의 귀를 막았다.”라고 했다. -


아는 것이 능하지 못하고 호오(好惡, 좋아하고 싫어함)가 바르지 못한 것은 마음에 미혹됨이 있어서이고, 남들이 나의 호오를 따르는 것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내가 스스로 자신하지 못하는데 남이 나를 신뢰함은 그들이 나를 편애한 것이다. 이는 마음의 병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말한다. 귀와 눈이라는 감각기관은 생각하지 못하여 외물에 가려지지만, 마음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먼저 큰 것을 확립해 놓으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 (맹자(孟子)에서 나온 말이다.)* 


보는 것이 밝지 못하고 듣는 것이 밝지 못한 것은, 마음이 공변되지 못한 데서 말미암는다. 무릇 지극히 공변된 것은 사사로움이 없고, 지극히 귀 밝은 것은 소리가 없고, 지극히 눈 밝은 것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대인(大人)은 사사로움이 없는 것에서 살피고 소리가 없는 것에서 들어 스스로를 반성하니, 어찌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겠는가? 오직 마음으로 거울을 삼을 뿐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소경과 이루(離婁)*는 그 눈이 다르지만 

그 자신을 봄에 이르러서는 똑같이 어두우니 

어찌 다른 사람을 보는 일에는 뛰어나면서 

자신을 보는 일에는 뛰어나지 못할까 

아아! 보는 일에 밝을 것을 생각하는 것은, 

천하에 눈을 가진 사람이 다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눈이 밝기가 가을 터럭의 끝을 보기에 충분한데도 

7척의 몸과 한 치의 마음에 대해서는 스스로 가려지는가

여기에 어떤 사물이 있는데 맑기는 물과 같고 평평하기는 쟁반과 같아, 

닦으면 빛나고 비추면 통한다 

지극히 은미하면서도 지극히 드러나고 사물에 응할 때는 텅 빈 듯하니

금인가, 동인가, 영대옹(靈臺翁)인가* 

밖으로 다른 사람을 잘 관찰하고 안으로 그 자신을 잘 살피니

참으로 그 쓰임이 무궁하다

그렇지만 오직 자신으로부터 보니 

이를 두고 ‘지극히 밝으면서도 지극히 공변되다.*’고 하는 것이다


*[옮긴이 주]마지막 문장, "지극히 밝으면서도 지극히 공변되다(至明而至公)":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사사롭지 않고) 지극히 밝으면서도 지극히 공평(공정)하다."  


[역자 주] 

1.귀와 눈이라는 감각기관은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귀와 눈은 생각하지 못하여 외물에 가려지니, 외물이 귀와 눈과 사귀면 거기에 끌려갈 뿐이다. 마음은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이치를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치를 얻을 수 없다.〔耳目之官, 不思而蔽於物, 物交物, 則引之而已矣. 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2.이루(離婁) : 황제 시대(黃帝時代)의 사람으로 눈이 밝기로 이름났다. 《맹자(孟子)》

3. 금인가, 동인가, 영대옹(靈臺翁)인가 : 금과 동은 거울을, 영대옹은 마음을 가리킨다. 영대는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영대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不可內於靈臺.)”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인데, 곽상(郭象)이 주(注)를 달기를 “영대라는 것은 마음이다.(靈臺者, 心也.)”라고 하였다.


-한장석(韓章錫, 1832~1894), '심경재 명 병서(心鏡齋銘 並序)',『미산집(眉山集) 제9권 / 명(銘)』-


▲원글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지양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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