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배움이란 뜻을 겸손히 갖는 것

독서하면서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 의문이 적으면 진보도 적고, 의문이 많으면 진보도 많다는 주자의 말이 실로 바꿀 수 없는 정론이지. 그러나 계속 의심만 하고 일정한 귀결처(歸結處)가 없으면 마음이 점점 분란해져서 실효를 얻기가 어려운 법이라네. 


나는 생각하기를 독서에 있어 자득(自得)이 비록 귀중한 것이지만 자득한 뜻이 먼저 마음 속을 가로막고 있으면, 선유(先儒)들 교훈에 대해 일부러 하자만을 찾아 내려는 병폐가 있을 염려가 있을 것일세. 따라서 우선 선유들의 주석대로 읽고 또 읽어 오래도록 침착하게 음미하고도 의문이 끝내 풀리지 않더라도 또 한번 생각하기를, “나의 일시적 얕은 견해가 선현들보다 나을 이치가 있겠는가. 이는 틀림없이 내가 잘못 본 것이지.”라 해야 하네. 


그리고 또 오래도록 읽어도 의문이 종내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의리(義理)로 질정을 해 보기도 하고 선각자를 찾아 묻기도 하여 지극히 온당한 길을 찾아야 할 것일세. 그리하여 만약 내 견해가 그다지 틀리지 않다면 나도 일설(一說)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일세.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을 느껴 선현들을 경시하는 습관이 생겨서는 절대 안 되네. 학(學)이라는 글자는 《서경》 열명(說命)에 처음으로 보이지. 그 대목을 보면, “배움이란 뜻을 겸손히 갖는 것이니 노력하여 때로 민첩하라.[學遜志懋時敏]” 했거니와, 학문하는 태도는 반드시 겸허해야지만 고인의 교훈 또는 벗들의 말을 쉽게 받아들여 사심(私心)이 앞서는 병폐가 없게 되는 것이네. 이것이 바로 만세(萬世)를 두고 학자들이 맨 처음 학문할 때 받아들여야 할 최고의 교훈인 것일세.


가만히 학자들의 태도를 보면 몇 10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의리를 강구하여, 다소 얻은 것이 있다 싶으면 그만 사사건건 선현들보다 앞서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구 해석이나 문장 단락에 있어 갈기갈기 찢어 발겨서 결국 여기저기서 따오고 이리저리 얽어매고 한다는 핀잔을 면치 못하는데, 그야말로 통렬히 징계해야 할 점이라 하겠네. (이하생략)


-안정복(安鼎福, 1712~1791), '권기명에게 답함(答權旣明書), 순암집(順菴集)/순암선생문집 제6권 /서(書)-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양홍렬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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