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덕(德)을 진취하려면 치지(致知)를 해야 한다

엊그제 그대의 큰형과 막내 아우가 나란히 적막한 물가에 사는 나를 찾아주었는데 난초 같은 인정을 거의 잊기 어려웠습니다. 그대의 큰형님이 오셨을 때 토론한 바가 많았는데 맞는 말을 하였는지의 여부는 논할 것도 없이 깊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대가 보낸 편지의 뜻을 보건대, 관례에 따라 쓴 세속의 편지가 아니고 충심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중략)대체로 학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고문(古文)을 널리 통달하고 반드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고문을 널리 통달하려는 것은, 많이 듣고 말을 신중히 하며 많이 보고 행실을 신중히 하며 자세히 묻고 명확하게 분변하며 많이 알고 덕을 쌓는 것을 말한 것이지, 세상 사람처럼 괴벽한 일이나 찾고 기이한 설이나 주워다가 많이 안다고 과장하며 화려하게 꾸며서 입과 귀로 기억하고 외우는 밑천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터득하려는 것은, 마음에 체득하고 몸으로 체험하여 진실로 쌓고 오랫동안 힘써서 자연히 관통(貫通)하는 것을 말한 것이지, 세상 사람처럼 사물의 이치를 꿰뚫치도 못한 채 마음대로 생각하다 우연히 보는 바가 있으면 스스로 옛날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하여 경서(經書)를 무시하고 도(道)를 벗어나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덕(德)을 진취하려면 치지(致知)를 해야 한다(進德在致知).”고 말하였고, 또 “치지(致知,이치를 따져보아 바르게 앎)를 하면서 경(敬, 절제하고 삼가함을 뜻함)을 하지 않은 자가 없다(未有致知而不在敬者).”고 말하였으며, 또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이 경(敬)이다(主一無適之謂敬).”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치지(致知)는 고문을 널리 보는 일이고, 경(敬)을 오래도록 하면 자연히 마음에 얻게 되며,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은 지선(至善)에 그치어 옮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일찍이 이에 대해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기 때문에 그대들을 위하여 말씀드린 것입니다. 


근래 일종(一種)의 학문은 고상한 의논을 좋아하고 신기(新奇)한 것을 끄집어내는 데 힘쓰면서 도리어 옛날 성인의 격언(格言)을 사법(死法)으로 간주하고 있으므로 제가 평소 강론하고 들은 바를 말할 곳이 없고 오직 그대의 형제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대의 형이 돌아간다고 하기에 잠시 이렇게 대충 썼습니다.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황이수(黃耳叟) 덕길(德吉)의 편지에 답하다(答黃耳叟德吉書)'『순암집(順菴集)/순암선생문집(順菴先生文集)제8권/서(書)』-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송수경 (역) ┃ 1997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