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차라리 서툴지언정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내가 병이 든 6년 동안 문을 닫고 바깥 출입을 끊었으나 손님의 접대는 그래도 전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나 손님들이 병이 심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기운은 날로 줄어들고 혈기는 날로 쇠잔하여 정신과 의지가 점차 전만 못해지는 것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러던 것이 올 봄 이후로는 형세가 비탈을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거의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의학상으로 보아 죽을 만한 증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러고서야 어찌 이 세상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겠느냐. 


삶이란 이 세상에 잠깐 들른 것이요, 죽음이란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사실 슬퍼할 것은 없다. 그러나 슬퍼할 만한 일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이 세상에서 살아온 48년 동안 칭송할 만한 일을 한 가지도 해놓지 못했다. 평생에 다른 소망은 없었고 오직 천하의 글을 읽어서 선을 행하여 악을 제거하고 자신을 수양하여 남을 다스려서 결코 헛되게 살다가 헛되게 죽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악을 반드시 제거하지도 못했으며, 자신을 수양하는 데는 결함과 허물이 많고 남을 다스리는 일은 시험해 볼만한 것조차 없었으니, 이래서 못내 마음에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번 본원(本原)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마음 또한 연기처럼 사라지고 구름처럼 흩어져서 예전대로 허허로운 태공(太空)이 되고 말 것이니, 이 못내 아쉬운 마음도 그와 함께 사라져서 완전히 망각되어버릴 것이다. 다시 무슨 여한이 남겠느냐. 내 병은 언어에 가장 큰 장애를 받는 것이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심해져서 말을 못하게 된다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느냐.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마음의 자취이니, 그 자취를 따라서 추구해 본다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큰 마디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은 유언을 귀하게 여겼던 것이니, 만일 이 유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시 어디 가서 이러한 유언을 듣겠느냐. 


그러니 의심쩍어 하지 말고 반드시 따라 지켜서 죽은 자가 알게 하고 산 자가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큰 믿음을 보존하여 차마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언에는 치명(治命)이 있고 난명(亂命)이 있는바,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치명이다. 그러니 부디 명심하여 벽에다 이를 걸어 두고 잊지 말도록 하여라.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형제간에는 화기 애애하고, 친구간에는 서로 충고하고 권면한다.” 하였고,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부자간에 선을 요구하는 것은 은혜를 해치는 것 중에서도 큰 일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형제간에는 충고하고 권면하는 도리가 없고 부자간에는 선을 요구하는 일이 없어야만 그 천륜의 관계를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형제 사이에 충고하고 권면하는 일이 반드시 없지는 않더라도 화기 애애한 뜻을 언제나 중시하고, 부자 사이에 선을 요구하는 일이 반드시 없지는 않더라도 지나치게 기대하는 마음을 항상 가벼이한다면 은혜와 의리 두 가지 모두가 온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화목한 것만 알고 충고하고 권면할 줄은 모르며 은혜를 해치는 것만 두려워하고 선에 대한 요구를 할 줄 모른다면, 기꺼이 가르쳐서 길러주는 성인의 마음에 어찌 천륜에 대하여 먼저 스스로 가볍게 하겠는가.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또한 충고하고 권면하며 선을 요구하는 것이니, 이것은 친구로서 대하는 일이다. 


대개 배움에 있어서는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귀중하다. 기질은 가장 변하기 어려우므로 맹장(猛將)이 군사를 부리듯, 혹독한 관리가 형옥(刑獄)을 다루듯 해야만 사심을 극복하여 점차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공력을 들이는 방법은 모두 경전(經傳)에 갖추어 있으니, 이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상고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서를 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람이 노력할 일이란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윤리 도덕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차질을 빚고 실수를 한다면 비록 절세(絶世)의 재주와 뛰어난 포부를 가졌더라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없다면 이 몸이 어떻게 태어났겠는가. 형과 아우는 같은 부모의 혈기를 받아 태어난 자들이다. 언제나 이런 이치를 생각하여 잠시라도 잊지 않는다면 효도와 우애의 마음이 저절로 뭉클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부모의 사랑을 얻지 못하더라도 공경하고 효도하여 행여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형제간에 신뢰를 얻지 못하더라도 분개하거나 원한을 가져서는 안 되고, 상대가 하는 대로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부부는 의리로 결합하였으면서도 은혜와 사랑이 앞서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무람없이 대하는 마음이 쉽게 생겨 가도(家道)가 어긋나고 어지럽게 된다.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효(孝)는 처자 때문에 쇠퇴한다.” 하였으며, 유중도(柳仲塗)는 말하기를, “의지가 굳은 남자 중에서 아내의 말에 미혹되지 않을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저 아내된 자가 어찌 모두 남의 골육 사이를 이간하려는 자들이겠는가. 다만 그 편협한 성품을 바꾸기가 어렵고 기쁘고 노여운 감정이 쉽게 생기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남편된 자가 혹시라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그 지속적인 소근거림에 현혹된다면 잠깐 사이에 그만 짐승의 소굴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니, 진정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찮은 일에서 자그마한 사단이 일어나 깊고 무거운 원한이 맺혀 정작 길가는 사람만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니, 이 정말 무슨 마음가짐이라 하겠는가. 만일 나의 평소의 마음가짐이 광명 정대하여 일상 생활에서의 윤리도덕이 그 어느 하나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애초부터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부부간에는 의리가 중하다. 그런데 지금 세상의 부녀자들이 대다수 배우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으니 어찌 의리가 중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모든 것이 남편된 자가 잘 이끌어서 선도하는 데 달려있을 뿐이다. 작은 잘못이 있을 때는 응당 가리워 덮어줄 일이지만, 만일 부모를 원망하거나 욕하고 지친 사이를 이간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는 결단코 용인할 수 없는 일로서, 깊이 증오하고 통렬히 물리쳐서 그러한 조짐이 자라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금에 복록을 누린 집안들을 두루 살펴보면 언제나 전세(前世)의 내행(內行)이 순후(淳厚)하게 갖추어졌던 가문에서 나왔으니,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친구간의 도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근래에는 교제를 하기가 실로 어려워서 몸을 그르치고 이름을 망치는 것이 이로 말미암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먼저 덕행을 본 뒤에 문예(文藝)를 취택할 일인바, 비록 문예가 볼 만하더라도 그 실행이 취할만한 점이 없으면 더불어 깊이 교제할 수 없는 것이다. 피차를 막론하고 서로 더불어 교제할 때에 오직 자신의 성의를 다하여 시종일관 공경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원한을 멀리하고 교제를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마음가짐이나 일처리에 있어 오직 하나의 ‘옳을 시[是]’ 자만을 추구할 일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남을 해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을 확충한다면 인(仁)을 다 쓰지 못할 것이며, 담을 뚫거나 넘어 가서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확충한다면 의(義)를 다 쓰지 못할 것이다.” 하였으며, 《시경》에 이르기를, “시샘하지 않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으리오.” 하였으니, 이 말이야말로 평생을 두고 받아들여 쓸만한 말이다.


사물(四勿)과 구용(九容)은 창졸간이라도 명심해야 한다. 《서경》에 이르기를 “자신에 대한 단속은 항상 부족한 듯이 하라.” 하였다.


치산(治産, 집안살림살이를 다스리고 재산을 관리함)과 이재(理財)는 가정이 있는 자로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 집안은 가난하여 지금까지 시궁창에서 뒹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으니, 이를 소홀히 하여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항상 의리의 마음을 중히 하고 외물(外物)에 대한 관심을 가벼이해야만 사군자(士君子)의 풍도(風度)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재물을 경영하는 데 몰두하여 고상한 지취(志趣)에는 전혀 어둡다면, 이는 용렬하고 속된 사람이 하는 짓인 것이다.


하늘이 재물을 낳은 것은 장차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바,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범 문정공(范文正公)이 귀한 경상(卿相)의 지위에 이르러서 구족(九族)이 그 혜택을 입었는데도 그가 죽은 뒤에는 염빈(斂殯)할 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다. 내가 일찍이 글을 읽다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실로 흠앙을 금할 수 없었다. 너희들은 항상 이러한 뜻을 지녀야 할 것이다.


《소학(小學)》 이 한권의 책은 사람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며 성인(聖人)이 되는 근기(根基)이다. 그러니 항상 이를 생각하고 외어서, 옛사람의 언행을 마치 자신이 직접 받들고 목격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그러면 오랫동안 축적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 또한 점차로 열려 선(善)한 단서가 유연(油然)히 일어나서 이를 받아 사용함에 다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몸이 다할 때까지 추구해나가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 밖에 순서에 따라 점차로 나아가는 독서의 규칙은 전유(前儒)의 성법(成法)이 있으니 이를 준행(遵行)할 일이다. 《사기(史記)》는 곧 치란(治亂)과 득실(得失)의 자취로서 또한 이를 익히 읽지 않을 수 없다. 천하를 경륜하는 도리가 비록 육경(六經)에 갖추어져 있지만, 그 구체적인 시비(是非)와 성패(成敗)의 자취는 사서(史書)에 갖추어 실려 있으니, 이것은 체용(體用)의 구별인 것이다.


나는 집이 가난하여 쌓아둔 책이 없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즐겨 책을 초록(鈔錄)하여 잊어버리는 것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상자에 가득한 난질(亂帙) 중에는 전혀 긴요한 것이 없다. 저서로는 《하학지남(下學指南)》이 참으로 볼 만한 것이 있으나 번거롭고 쓸데 없는 부분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였다. 《독사상절(讀史詳節)》 또한 그 번거로움과 간결함이 적절하나 양한(兩漢) 부분이 없어졌고 송명(宋明)의 것은 편찬하지 못했으며, 중간에도 줄이거나 윤색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이것은 완성되지 못한 책이다. (중략)


‘근졸(謹拙, 스스로 못난다 여기고 매사에 삼가함)’이라는 두 글자는 곧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성법(成法)이다. 그러므로 그 사이 세란(世亂)이 빈번했지만 화환(禍患)을 당하지 않았으니, 그 효력이 그런 것이다. 너희들도 이를 깊이 체념(體念)하여 전수(傳授)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라.


우리 가문의 세덕(世德,여러 대(代)에 걸쳐 쌓아 온 아름다운 덕)에 대해서는 직접 듣고 보았을 것이다. 광양군(廣陽君)의 치밀하고 신중함, 겸손하고 공손함, 토산공(兎山公)의 효성과 우애, 탁월한 행실, 왕고(王考)의 자상한 이해심과 화락하고 단아함, 선군(先君)의 청렴 결백과 고상한 지조는 자손으로서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젊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다가 늦게야 도학(道學)으로 돌아오게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실로 헛되이 죽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재분(才分)이 노둔(駑鈍, 어리석고 둔함)해서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함에 항상 정해진 순서를 따라서 옛사람이 하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는 차라리 서툴지언정 잔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이 방법을 따른다면 그런대로 성취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재덕(才德)을 헤아리지 않고 함부로 논하는 바가 있다면 거기서 생기는 폐단이 장차 성인의 말씀을 능멸하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여라.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아우 정록과 아들 경증에게 주는 유서'(示弟鼎祿子景曾遺書), 순암집(順菴集)/순암선생문집 제14권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홍승균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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