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이(利), 사(私)의 분별
지난번에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를 논한 별지(別紙)를 받았으나 병이 많아서 미적거리다가 오래도록 회답하지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이(利)라는 것은 의(義)의 화(和)이다(利者 義之和).”라고 한 것에 의심을 품게 되어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인용하여 그 다르고 같은 곳을 지적하여 세밀하게 분석하였으니, 생각이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오히려 온당하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바로 다시 가부(可否)를 여쭙니다.
이 이(利)라는 글자를 혼합하여 말해서 의화(義和) 속에 있다고 설명한 것은 옳지만, 저 사(私)라는 글자를 말하여 좋지 못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은 잘못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형(形)과 기(氣)는 자기의 몸에 속한 것이니 바로 이것은 사유(私有)의 것으로써 도(道)가 공공(公共)인 것과는 같지 않으므로 사(私)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가 곧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였습니다.
진서산(眞西山)도 말하기를, “사(私)라는 것은 나에게만 소속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 자를 좋지 못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또 말하기를, “앞에서는 천리(天理) 가운데 인욕(人欲)이 있다고 설명하는 듯하고, 뒤에서는 천리로 인해 인욕에 흐르는 것을 말한다.” 하였으니, 이 설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대개 이(利)라는 글자의 뜻을 본래대로 말하면 다만 순리로 편익(便益)을 이루는 것을 이름한 것입니다. 군자(君子)가 의(義)로써 일을 처리하는 것이 순리로 편익을 이루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이(利)라는 것은 의(義)의 화이다.”라고 한 것이니, 예컨대 “천리를 따르면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만약 이(利)를 인욕(人欲)이라고 한다면 천리 가운데는 터럭 하나도 붙일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의(義)의 화(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이 ‘이(利)’ 자와 ‘사(私)’ 자는 모두 일반적인 ‘이(利)’나 ‘사(私)’ 자와는 현격히 다릅니다. 지적한 곳은 비록 다르나 형(形)과 기(氣)의 사(私)는 지각(知覺)이 발생하여 작용하는 곳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요, 의화(義和)의 이(利)는 조술(操術) 모위(謀爲)하는 곳을 지적하여 말한 것입니다. 유례(類例)는 서로 같으니 사(私)라는 것은 자기의 소유라는 것뿐이지 사욕(私欲)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利)는 순리로 편익(便益)을 이루는 것뿐이지 이욕(利欲)이 아닙니다. 인용하여 고증한 것은 매우 좋은데, 다만 스스로 설명한 곳이 도리어 진흙을 물에 탄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아마 이치를 연구함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일 것이니, 거듭 되풀이한다면 이른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깊은 뜻을 여기에서 깨우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大學)》에는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체(體)와 용(用)이 다 실려 있다고 한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선에 그치는 것[止至善]을 일관(一貫)에 해당시키고, 혈구(絜矩)ㆍ재용(財用)ㆍ용인(用人)을 제도(制度)와 문장(文章)의 일이라고 한 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로 지선과 일관이 두 가지 이치는 아니지만 지선이라는 것은 모두 일과 온갖 만물이 각각 지극히 알맞은 도리에 있는 상태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니, 예컨대 임금은 어질고, 신하는 공경하며,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는 등과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일관이라는 것은 대원칙과 큰 근본에서부터 천차만별(千差萬別)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관통한다고 하는 것이니, 예컨대 천지(天地)가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어서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으며, 성인(聖人)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의 이(理)로 융합되어 있어서 널리 수응하면서도 곳곳마다 합당하여 쓰는 것이 각각 같지 않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적하는 곳이 같지 않으면 말을 하는 취지도 달라지니, 이치가 같다고 하여 합쳐 모아서 하나의 설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지선(至善)에 지(止) 자를 더한 것은 증자가 실제로 힘을 쏟는 곳에서 일에 따라 정밀하게 살피고 힘써 행하는 일이어서일 뿐이니, 어찌 여러 이치가 하나에 모였다고 하여 일관과 그 뜻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혈구(絜矩)의 작용이 비록 넓다고는 하나, 다만 이것은 자신의 마음으로 인하여 상대를 헤아려서 균등하고 방정(方正)함을 얻는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이지, 원래 제도와 문장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재용(財用)ㆍ용인(用人)에 이르러서는 또한 천하를 가진 자가 이런 일에 대해 이렇게 하면 선(善)한 것이어서 얻을 수 있고, 저렇게 하면 선이 아니어서 잃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권하거나 경계한 것이 모두 '혈구(絜矩)의 뜻'을 미루어 넓혔을 뿐입니다. 어찌 한마디라도 제도와 문장의 일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까?(옮긴이 주: 혈구(絜矩)는 나무나 쇠로 만든 ‘ㄱ’ 자 모양의 곱자로 잰다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려 안다'는 의미다. 대학에 나오는 전체 내용은 이렇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다.'함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면 백성들이 효도를 다 할 것이며,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받들면 백성들 사이에서 공경함이 일어나며, 윗사람이 외로운 이를 불쌍히 여기고 구휼하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다. 윗사람이 싫었던 것을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이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뒷사람에게 먼저 하게 하지 말고, 뒷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 싫어하는 일로 왼쪽 사람과 교제하지 말고,왼쪽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것이니, 이를 '혈구의 도'라 한다." 집주(集註)에서 이를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 "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서(恕, 남의 처지를 헤아림), 그 한마디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무엇을 제도ㆍ문장이라고 합니까? 〈주관(周官)〉에 기록된 허다한 법제(法制)라든가 또 경례(經禮) 3백, 곡례(曲禮) 3천 등 문(文)과 질(質)을 가감하는 것과 모든 정교(正敎)와 호령(號令)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당시 안연(顔淵)이 질문한 것은 곧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물은 것이지 학문을 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자(孔子)는 사대(四代)의 예악(禮樂)에서 문(文)과 질(質)의 마땅한 것을 참작하여 만세(萬世)에 떳떳하게 행할 법을 세워 획일(劃一)하게 고해 주셨는데 거기에는 은연중에 주공(周公)이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만든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바야흐로 사람에게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학문을 가르치면서 마음을 보존하고 다스림을 펴내는 근본을 버리고 다짜고짜 이것을 언급한다면, 근본과 지엽이 도치되어 실용에 적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이 또한 까닭이 있어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용처(用處)에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제도와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또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공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일을 공경하되 미덥게 하고, 재물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리되 시기에 알맞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공경을 근본으로 삼고서 네 가지 일을 둔 것이 어찌 체(體)와 용(用)을 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산(龜山)은, “이것은 다만 그 마음가짐을 논하였을 뿐이고 정치하는 것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대학》이라는 책은 마음을 보존하고 정치를 펴는 근본이 되는 것이고 제도ㆍ문장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어찌 근거 없는 말이라 하겠습니까.
지선(至善)을 외면하고 일관을 찾는다는 이러한 사리는 진실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지선을 가리켜 일관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지류(支流)를 보고 근원(根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니,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진실로 평천하장(平天下章)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이 장의 내용을 가리켜 제도와 문장의 손익이 다 여기에 구비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저울을 만들면서 눈금을 만들지 않고 관석(關石)과 화균(和鈞)이 다 여기에 구비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천하 만물을 관통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이치뿐입니다. 그러므로 의리와 언어를 모호하게 뒤섞어서 말한다면 같다고 하지 않을 것이 없으며, 억지로 끌어 당겨서 말한다면 근사(近似)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결국에는 당초 성현(聖賢)이 말을 세운 본의가 이와 같지 않아 경서(經書)의 교훈을 드러내 밝히지 못해 진리를 가리우고 실견(實見)을 어지럽게 함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병통입니다.
옛사람들이 일평생을 강학(講學)하면서도 세월이 부족하다고 한 까닭이 이같이 의리의 세밀한 곳은 틀리기 쉽고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며, 공부에 착수하기는 쉽지 않고 그만두는 것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족하(足下)가 의심하여 논란할 것이 있으면 계속 편지를 보내오는 데 감동하여 되는 대로 어리석은 견해를 드러낸 것이니, 널리 보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황(李滉, 1502~1571), '황중거(黃仲擧)에게 거듭 답하다(重答黃仲擧)', 퇴계집(退溪集)/ 퇴계선생문집 제19권/ 서(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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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것을 특질로 하는 학문분야이다" (들뢰즈)
"훌륭한 행실로 인하여 보상을 받는 것은, 노예들이지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정치론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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