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우는 이유
사람에게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다. 나이가 어리면서도 연장자를 섬기려 하지 않는 것과, 신분이 미천하면서도 존귀한 자를 섬기려 하지 않는 것과, 어질지 못하면서도 어진 자를 섬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사람에게 세 가지 반드시 곤경에 빠질 일이 있다. 윗사람이 되어 아랫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고, 아랫사람이 되어 윗사람을 비방하길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곤경에 빠질 첫 번째 일이고, 상대방을 대면하여 순종치 못하고 뒤돌아서서 비난하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곤경에 빠질 두 번째 일이고, 지혜는 낮고 행위는 경박하며 그 재능의 유무가 또 일반인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는데도 어진 사람을 추천하지도 못하고, 지혜로운 인물을 존경하지도 못하는 것이 사람이 반드시 곤경에 빠질 세 번째 일이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몇 가지 행위를 지녔을 때, 그가 윗사람이 된다면 반드시 위험한 일을 당할 것이고, 아랫사람이 된다면 반드시 괴멸될 것이다. 시경≪詩經≫에 “눈꽃이 온 하늘에 펄펄 날려도 햇빛 한번 비추면 녹아버리네. 사람은 물러날 걸 생각지 않고 높은 자리 차지해 거들먹대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만물 상호간의 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굶주리면 밥을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싶고, 힘들면 쉬고 싶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것은, 곧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이니,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禹)와 걸(桀)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저 두 다리에다 온 몸에 털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물 상호간의 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지금 저 성성이의 형상도 사람처럼 두 다리에다 얼굴에 털이 없다. 그렇지만 군자가 그 고깃국을 마시고 그 저민 고깃점을 먹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저 그 두 다리에다 또 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물 상호간의 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저 금수는 부자간의 관계는 있지만 부자간의 친애하는 정은 없으며, 암컷과 수컷은 있지만 남녀간의 구별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리는 사물 상호간의 관계를 구별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각종 관계를 구별하는 것은 명분을 확정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명분을 확정하는 것은 예법을 따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예법을 따르는 것은 성군(聖君)을 본받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성군(聖君)은 백 명이 넘는데 우리는 누구를 본받을 것인가? 그 답은 이렇다. 예법 제도가 세월이 오래되면 사라지고 음악의 음률도 세월이 오래되면 끊기며, 예법의 규례를 지키는 관리도 세월이 오래가면 지쳐서 해이해진다. 그러므로 “성군(聖君)의 정치행적을 살펴보려면 그들 가운데 가장 드러난 인물을 살펴보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곧 후대의 왕이다.
저 후대의 왕이란 천하의 군주이다. 후대의 왕을 놓아두고 오랜 옛날의 왕을 따르는 것은, 비유하자면 자기 군주를 제쳐두고 남의 군주를 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천 년의 지나간 일을 살펴보려면 먼저 오늘의 일을 살펴보고 억만 가지의 사물을 알려면 먼저 한두 가지 사물을 살펴보며, 상고시대의 일을 알려면 먼저 주(周)나라의 정치제도를 살펴보고 주(周)나라의 정치제도를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이 존귀하게 여기는 군자를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일을 통해 먼 옛날의 일을 알고, 한 가지 일을 통해 만 가지 일을 알고, 은미한 것을 통해 드러난 것을 안다.”라고 말하니, 곧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옛날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 옛날에는 안정되었고 지금은 혼란스러운 이유가 다스리는 방법이 달라서이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일반 군중이 그들에게 현혹된다.
저 일반 군중은 어리석어 도리를 언급하지 못하고, 식견이 고루하여 옳고 그른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눈으로 보는 것도 오히려 속아 넘어갈 수 있는데, 하물며 수천 년 이전에 전해오는 말이겠는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은 문 안에서 벌어진 일도 오히려 남을 속이는데, 하물며 수천 년 이전에 있었던 일이겠는가.
성인(聖人)은 무엇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가? 성인(聖人)은 자기의 생각으로 옛사람의 생각을 미루어 헤아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의 정황으로 옛사람의 정황을 헤아리고 지금 사람의 감정으로 옛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며, 지금의 한 가지 사물로 옛날 동일한 유의 사물을 헤아리고 지금까지 전해온 학설로 옛사람의 업적을 헤아리며, 일반적인 도리로 고금(古今 옛날과 지금, 과거와 현재) 사물의 이치를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이니, 고금(古今)이 동일하다. 동일한 종류의 사물은 서로 어긋나지 않아 세월이 비록 오래되었더라도 이치는 같다.
그러므로 성인은 어떤 그릇된 주장에 직면하더라도 헤매지 않고 복잡한 사물을 보더라도 현혹되지 않으니, 이는 그가 이와 같은 도리로 그것들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순자집해(荀子集解), '비상편(非相篇)'중에서-
▲원글출처: 전통문화연구회/동양고전종합DB(http://db.cyberseod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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