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자기를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공손하고 검소한 덕은 무기의 재앙도 물리칠 수 있다. 비록 창의 날카로운 끝이 있더라도 공손하고 검소한 덕의 날카로움만 못하다. 그러므로 남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포백(布帛, 삼베무명 과 비단, 옷감을 뜻하는 말)보다 따뜻하고, 남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면 상대방에게는 그 상처가 창에 찔리는 것보다 더 깊다.
그러므로 광활한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은 그 땅이 불안해서가 아니다. 발이 떨려 감히 밟지 못한 것이니 그 까닭은 순전히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입힌데에 있다. 큰 길을 걸어가면 사람이 많아 소란스럽고 작은 길을 걸어가면 울퉁불퉁하여 위험하니, 아무리 신중하지 않으려 해도 그 무엇이 신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만 같다.
감정대로 거침없이 행동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분노 때문이며, 모든 것을 잘 살피더라도 상해(傷害)를 당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며, 박식하면서도 곤경에 처한 것은 남을 비방했기 때문이며, 청백(淸白)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더 흐려지는 것은 하는 말이 많기 때문이며, 상대방을 잘 대접해주는데도 우정(友情)이 자꾸만 더 야위어지는 것은 교제가 바르지 않기 때문이며,
언변이 좋은데도 남을 회유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기 때문이며, 인품이 정직한데도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이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품행이 방정한데도 남이 존귀하게 여겨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며,
용맹한데도 남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탐욕스럽기 때문이며, 신의를 추구하는데도 남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독단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니, 이것들은 모두 소인(小人)이 추구하는 행위이고 군자(君子)는 행하지 않는 일이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잊어버린 것이고, 자기 부모를 잊어버린 것이며,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 것이다. 잠깐의 분노를 풀고 평생의 육신을 잃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그 행위를 하니 이는 자기 생명을 잊어버린 것이고, 가정이 당장 상해를 당하고 친족이 살육을 면치 못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그 행위를 하니 이는 자기 친족을 잊어버린 것이며, 다투는 행위는 군주가 미워하는 것이고 형법이 엄하게 금하는 것인데도 그래도 여전히 그 행위를 하니 이는 자기의 군주를 잊어버린 것이다.
아래로는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어버리고 위로는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다면 이는 바로 형법이 용서하지 않는 일이고 성왕(聖王)이 그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일이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암퇘지가 호랑이를 건드리지 않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암캐가 멀리 나가지 않는 것은 자기 혈육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아래로는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어버리고 위로는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다면, 이는 곧 사람으로서 개나 돼지만도 못한 것이다.
대체로 싸운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말 옳고 남이 정말 틀렸다면 자기는 곧 군자이고 남은 곧 소인이다. 군자의 신분으로 소인과 서로 상해를 입혀 아래로는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어버리고 위로는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다면 어찌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은 이른바, 호보(狐父, 지명이름)에서 만들어진 질 좋은 창으로 쇠똥을 치는 격이다.
혹시 그를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다. 혹시 그가 이익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보다 더 큰 해로움은 없다. 혹시 그가 영광스럽다고 하겠는가? 이보다 더 큰 치욕은 없다. 혹시 그가 안전하다고 하겠는가? 이보다 더 큰 위험은 없다.
사람들이 싸우는 일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그들을 정신병자로 치부해버릴까도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성왕(聖王)은 또 이런 사람을 문책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새나 생쥐 같은 짐승으로 치부해버릴까도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들의 형체가 또한 사람이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여느 사람과 많이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싸우는 일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이런 사람을 매우 추악하게 여긴다.
개와 돼지의 용맹이 있고 장사꾼과 도둑의 용맹이 있으며, 소인(小人)의 용맹이 있고 사군자(士君子)의 용맹이 있다. 음식을 쟁탈하고 염치가 없으며, 옳고 그른 것을 모르고 죽고 다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며, 대중의 힘이 강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욕심이 팽배하여 오직 먹고 마실 것만 눈에 보이는 것은 곧 개와 돼지의 용맹이다.
일을 처리할 때 이익만을 도모하여 재물을 쟁탈하고 사양하는 일이 없으며, 행동은 과감하여 드세고 심술은 사납고 탐욕스러워 포악하면서 욕심이 팽배하여 오직 이익만 눈에 보이는 것은 곧 장사꾼과 도둑의 용맹이다. 죽음을 가볍게 보고 난폭한 것은 곧 소인의 용맹이다.
의리가 달려 있는 일에는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으며, 온 나라를 통째로 넘겨준다 해도 자기의 관점을 바꾸지 않고 목숨을 중시하면서도 의리를 견지하여 굽히지 않는 것은 곧 사군자(士君子)의 용맹이다.
피라미는 물 위에 떠 햇볕을 받기를 좋아하는 물고기이다. 이것들이 백사장에 걸려 숨을 헐떡거리면서 물을 그리워한다면 이미 때가 늦어 미칠 수 없고, 재앙을 만난 뒤에 조심하려 한다면 도움 될 것이 없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궁지에 처하고(怨人者窮),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식견이 없다(怨天者無識). 자신이 잘못하고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면 어찌 도리와 멀지 않겠는가.
-순자집해(荀子集解), '영욕편(榮辱篇)'중에서-
▲원글출처: 전통문화연구회/동양고전종합DB(http://db.cyberseod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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