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오직 내 마음을 따를뿐
조정에서 사론(士論)들이 서로 편을 나누고 가르는 까닭에 벗을 사귀는 도리가 그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보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벗을 사귀는 도리는 오직 하나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나?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도 오히려 불행인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으로 갈라져 버렸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으로 다섯으로 갈라지고 제각각 한통속이 된 것은 모두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즉 사람의 의리를 어찌 쉽게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당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인 사람은 어느 한편에 붙지않고 혼자라는 그것 때문에 다른 네 다섯과 적이 되고 만다. 그러하니 혼자인 사람이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하나의 세력이 성하면 다른 하나의 세력이 쇠하고, 하나를 지키고 나아가면 다른 하나는 물러가며 스스로 절의가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어찌하여 그 절의가 자기들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단 말인가? 누런 것은 본디 누렇고 푸른 것은 본디 푸른 법이다. 그 푸르고 누런 겉모습이 과연 그 본성일까? 갑에게 물어보면 갑이 옳고 을은 그르다고 한다. 을에게 물어보면 을이 옳고 갑이 그르다고 한다. 갑과 을 모두가 옳은 것일까? 아니면 모두 그른 것일까? 갑과 을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단 말인가?
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士)들을 보건대 나처럼 혼자인 자가 어디 있는가? 홀로 세상 길을 걸어가는게 삶일진대, 어찌 벗을 사귀는 도리가 무리에 붙어 한 편으로 치우치고 줄을 서는 것이겠는가? 한 편에 붙지 않는 까닭에 넷이든 다섯이든 모두를 나의 벗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즉 내가 벗을 사귀는 폭이 어찌 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파벌이 주는 냉정한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로 차갑다. 그렇지만 나는 그 차가움에 벌벌 떨지 않는다. 파벌의 뜨거움은 흙을 태울 정도로 뜨겁다. 그러나 그 불씨가 옮겨 붙어 내가 불타오를 이유가 전혀 없다. 세상사가 내가 원하다고 해서 마땅히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또 안 될 것도 없다. 그런즉 나는 오직 내 마음을 따르겠다. 내 마음의 귀결점은 오직 나에게 있을 뿐이다. 그러하니 취하고 버림, 가고 옴, 들어가고 나옴의 거취가 외물이나 이욕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 이 어찌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겠는가?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연경으로 가는 이성징 영공에게 주는 글(贈李聖徵廷龜令公赴京序)'「어우집(於于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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