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있고 없음의 유무

이 세상에는 있지만 없는 것이 있다. 없지만 있는 것도 있다. 있음에도 가지지 못해서 없는 것은, 있지만 없는 것이다. 없음에도 가질 수 있어서 본래부터 있는 것은, 없지만 있는 것이다. 진실로 그 있는 것에서부터 미루어 헤아려 있는 것을 없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있고 없음의 유무는 모두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많이 가진 것은 오직 옛사람들의 책뿐인 사람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만나 후미지고 외진 곳에 살게 되니, 예전에는 있던 것들이 지금은 많지 않다. 선비 중에 책이 없는 사람은 갖고 싶지만 얻지 못한다.  있지만 그가 사는 지역에는 없는 까닭이다. 있지만 없는 이것은 마치 세상의 것에 어두운 것과 같다. 이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안타깝다!


이에 있는 사람이 그 가진 것을 꺼내어 적막한 곳에 펼쳐놓았다. 덕분에 부르지 않아도 없는 사람이 절로 모인다. 사지 않아도 서로 바꾸어 볼 수도 있다. 이로써 적막하고 빈 계곡이 있는 것으로 가득 찬 곳이 되었다. 이로 보건대, 없지만 능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미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만일 내가 옛 것을 답습하여 이미 지나간 것을 찾는다면,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즉 비록 많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하 생략)

 

-유몽인(柳夢寅, 1559~1623), '박고서사서(博古書肆序)', 『어우집(於于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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