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용(庸)이라는 글자에 담긴 '한결같음'의 의미/ 홍석주

용(庸, 떳떳할 용, 쓸 용)과 구(久, 오랠 구)는, '언제나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공히 가지고 있다. 이는 그 속성이 변함없이 '한결같음'(常, 항상 상, 떳떳할 상)을 뜻한다.  한결같음(常)의 속성이 바탕이 되어야 오래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감' (久)의 뜻(訓)이 비로소 통한다. 주역(周易)에 “한결같이 떳떳한 덕(庸德)을 행하고,  한결같이 떳떳한 말(庸言)하기를 힘써 조심하라"(庸德之行 庸言之謹)”는 가르침이 이와 같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의 덕은 지극하고도 지극하도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라고 하셨다.

용(庸)이 '한결같음(常)'의 뜻을 가졌다는 데에는 다른 논의가 있을 수 없다.  천하 만물을 담고 품어서 태어나 자라게 하는 것은 천지(天地) 대자연의 '한결같음'(常)이다. 인의예지(仁義禮知)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할 '한결같음(常)'이다. 낮은 밝고 밤은 어둡고,  봄은 따뜻하고 가을은 서늘한 것은 시간의 '한결같음(常)'이다. 주리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더울 땐 갈옷을 입고 추울 땐 털옷을 입는 것은 일상의 '한결같음(常)'이다.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성스러우며, 임금은 인자하고 신하는 충성스러운 것은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의 '한결같음(常)'이다. 

이처럼 '
한결같음(常)'이 덕(德)이 되는 까닭은, 세상 천하에 두루 통하고 미치는 올바름(義) 때문이다.  우서(虞書)에서 “이 모든 것이 뚜렷하게 떳떳한 한결같음(常)이 있으니, 길하다(彰厥有常 吉哉)”하였고, 하서(夏書)에서 “하늘의 한결같음(天常)을 본받아 피함(帥避天常)*”이라 하였으며, 주서(周書)에서 “한결같은 사람(常人)을 등용하라”고 하였 으니, 성인(聖人)이 한결같음(常)을 귀하게 여긴 것이 이와 같다. 


근세(近世)에 고증(故證)을 하는 학자들은 흔히 말하기를 “보통(庸常)의 사람들은 군자(君子)가 비천하게 여기는 바이니, 어찌 용(庸)을 좋게 이르는 것이라 여기는가?”라 한다.  그러나 옛날에 도(道)를 논할 때는 그것이 실제로 사용되어 이루어진 것(功)을 헤아리지 않았던 적이 없다. 고로 용(庸)이라는 말은 공(功)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도(道)를 논하면서 먼저 그 공을 혜아리는 것은, 도의 결과로 보편적으로 이루어 진 것들에 우선하여 도(道)가 진실로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庸人)이라는 칭호와 같은 것은 앞선 시대의 경전에는 진실로 이러한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 말이 각각 분명하게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에, 용(庸)이라는 글자에 집착하여 중용(中庸)의 도(道)를 깍아 내릴수는 없는 일이다.

령(令, 하여금 령)이라는 것은 '훌륭하다(善)'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훌륭한 명성 혹은 명예(令聞), 훌륭하고 좋은 평판(令望), 훌륭한 마음가짐 혹은 태도(令義), 훌륭한 모습(令色) 등은 모두 좋게 부른 이름(美稱)이다. 공자(孔子)는 “교묘하고 화려하게 꾸민 말솜씨와 얼굴빛과 표정을 좋게 꾸미는 자 중에 어진 사람은 드물다 (巧言令色, 蘇疑仁).”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장에 언급된 영색(令色)만을 논거로 하여 중산보*(仲山甫, 주 선왕을 섬겼던 어질고 현명한 신하)의 어질고 훌륭한 모습을 어찌 깍아내릴 수 있겠는가? 

미(媚, 아첨할 미, 예쁠 미)라는 것은 '따른다(順)'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시경(詩經)에 “곱고 이쁜 이 한 사람"(媚茲一人)이라 표현하였고, 또 “여러 훌륭한 왕과 좋은 선비들이 숱하게 모여 있지만, 오직 군자(君子)로 부림을 받는 사람만이 천자의 이쁨을 받는구나(藹藹王多吉士, 維君子使, 媚于天子) ”라 하였다. 후세(後世)에 이르러 '미()'라고 말한 것은 모두, 마음이 치우쳐 있어 곱게 보이고자 꾸미고 아첨하는 소인배(小人)에게 사용된다. 

강함(强, 굳셀 강)이라는 것은 약함(弱)의 반대말이다. 세속에서는 도적(盜敵)을 강한 사람(强人)이라 부른다. 만약 보통 사람(庸人)이라는 칭호에 사용된 용(庸)이라는 글자때문에, 중용(中庸)이 가진 본래의 의미에 대하여 의심을 혹 품는다면, "가운데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고, 죽더라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끗꿋하고 굳센 것을 강함(强)이라 한다. (中立不倚. 至死不變之强 / 중용, 예기)"라는 말도 또한 강(强)이라는 글자에 담긴 하나의 뜻에만 집착하여 장차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가?(옮긴이 주: 공자는 강함의 의미를, 질문하는 제자들의 각자 인격과 특성에 맞게 여러 의미로 다양하게 풀어서 가르쳐 주었다. 인(仁)의 개념과 같은 여타의 다른 개념도 마찬가지다.)

또 어떤 이는 용(庸)을 '오래 감'(久)으로 풀이하면서도 변치않는 '한결같음'(常)으로는 풀이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오직 한결같음(常)을 유지하기 때문에 오래 간다. 그 근본에서 한결같지 못한 것은 결코 오래 갈 수 없기때문이다. 혹 한결같음(常)이 아닌 일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을 기록함에 있어서 옛사람들도 혹 어쩔 수 없어서 용(庸)자를 포함하여 사용한 적은 있다. 그러나 결국은 글자의 한꼭지만을 들어 협의의 해석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세에 전할 가르침으로는 삼지않았다.  

-홍석주(洪奭周, 1774~ 1842),『연천집(淵泉集) 권2  9則 -

▲참고: 번역문은 "홍석주의 학강산필에 나타난 문학관에 대하여" (강석중, 인제대교수)의 글을 원본으로 참고하여, 재해석하고 나름 이해하는 글로 다시 풀어서 옮겼다. 

※옮긴이주:  
1. 
帥避天常(수피천상), 선생이 출전으로 인용한 서경의 하서(夏書)에는 이 문장이 없다. 번역이 모호한 것 같아 어렵게 찾아보니 춘추좌전 애공편에서 공자가 하서(夏書)를 인용한 글이 그 출전이다.  그것도 원글에다 공자가 덧붙여 인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문인 하서의 오자기가의 내용은 이렇다. "그 중의 셋째가 이르기를, 저 요임금으로부터 이어져 기(冀)나라를 다스려 왔으나, 지금은 그러한 도를 잃고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져 결국은 멸망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춘추좌전에서 삽입된 글은, " 공자왈, 하서에 이르기를, 저 요임금으로부터 이어져
 '저 하늘의 한결같음을 본받아(帥彼天常)기(冀)나라를 다스려 왔으나,  지금은 그러한 도를 잃고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져 결국은 멸망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런데 춘추좌전의 기록은 '帥避天常'(수피천상)이 아니라  '帥彼天常(수피천상)'이다.  避(피할 피)와 彼(저 피)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삼가하여 피하는 것이고 후자는 모범이 되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공자가 하서의 글을 인용한 것을 선생이 재인용한 것이고, 또 재인용하면서 동일한 음의 한자를 혼동하여 표기한 것으로 이해해 본다.  이는 논증을 위해 의도적으로 달리 표기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추측의 근거가 된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떳떳하고 '한결같음(常)'을 강조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 글의 요지를 나름 정리하자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사용하고자 하는 문자의 정확한 이해에 있다고 하겠다. 또 문자의 지엽적인 의미에만 집착하여 곡학아세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로 이해해도 되겠다. 적절하게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는 소통과 이해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된다 하겠다. 둘째로, 무언가에 치우치지 않고 변함없이 떳떳하게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항상성은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할 인간됨의 도리임을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다. 참고로 정약용 선생도 기존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용(庸)의 개념을 변함없이 일정함, 즉 '恒常'(항상)의 의미로 해석하여, 홍석주선생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2. 중산보(仲山甫): 주나라 선왕의 가신이다. 인품이 훌륭하고 현명하여,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였다. 중산보를 칭송하는 노래는 시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자성어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유래가 되는 주인공이다.  명철보신이란, '천하의 사리와 이치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도리에 맞게 적절하게 행하고, 아울러  자신을 잘 보전한다'는 뜻이다. 이 좋은 말이 왜곡되어 현세에 이르러 소인과 모리배들의 전유물이 된 것은 역설이다. 여담으로 선조수정실록 37년(1604) 3월 1일 기록에 '명철보신'에 관한 이런 글이 찾아진다.  “간흉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 있게 하고 사기(士氣)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까지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강명(講明)한 학문을 저버리지 않는 것임은 물론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도리이다. 그런데 언적은 여러 간사한 자들 사이에 발을 들여놓고 풍파(風波) 사이에 부침(浮沈)하였지, 직언 극론(直言極論)으로 간흉들의 간담을 격파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였다. 나아가서는 국가를 바로잡지 못하고 물러나서는 몸을 깨끗이하여 멀리 벗어나지도 못하였다... 옛부터 지금까지 소인(小人)과 행동을 함께한 자로서 그 재앙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선조가 성리학자로 명성이 있는 이언적을 향하여 죄책을 물으며 질타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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