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타인이 행한 일에서 선한 점을 인정하는 기준 / 홍석주
그 마음이 옳으면 행여 그 말이 잘못되었더라도, 군자는 그 마음을 보아 그 말을 용서해 준다. 비록 그 마음이 그릇되었다할지라도 그 말이 옳으면, 군자는 그 말을 취할 따름이다. 이것이 군자가 타인이 행한 일에서 선한 점을 인정하는 기준이다(此君子所以與人爲善也차군자소이여인위선야, 옮긴이 註: 그래서 논어에 군자는 긍지를 지니면서도 다투지 않고 두루 섞이어 조화를 이루되 패거리를 이루거나 편을 가르지 않고, 너그럽고 태연하며 교만하지 않다고 특정한다. 군자와 달리 소인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다. 옛 선진들은 소인중에서도 특히 그속을 드러내지 않는 용렬한 소인을 가장 경계하였다.).
한 나라 원제(元帝)가 풍야왕(馮野王)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고자 하여 석현(石顯; 한 원제 때의 환관, 내시)에게 물어보았다. 이보다 앞서 풍야왕(馮野王)의 형인 준(逡)이 석현이 권력을 제멋대로 남용함을 비판한 것을 두고 석현이 그것을 마음속 깊이 미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구경(九卿) 가운데 야왕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야왕은 폐하께서 친애하시는 소의(昭儀)의 오라비입니다. 신은 후세 사람들이 폐하께서 후궁의 친족을 사사로이 편애하였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야왕은 이 때문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원제의 측근 환관인 석현은 겉으로는 공의(公議)에 의탁하면서 속으로는 자기의 사적인 감정을 풀었다. 이것은 진실로 석현이 아주 간사한 인물로 간주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 후궁의 친족을 사사로이 편애해서는 안되므로 등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이또한 천하의 지극히 올바른 명분있는 논리다. 이런 까닭에 공적인 일에 사사로운 감정을 풀었던 간사한 인물인 석현의 말이라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또한 야왕은 진실로 현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야왕 한 사람 쓰이고 안 쓰이는 것으로 한 나라의 존망(存亡)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가령 야왕을 등용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서 그것을 법도로 삼았다면, 어떻게 해서 황제의 외가 인척들인 왕봉(王鳳)ㆍ왕음(王音)ㆍ왕상(王商)ㆍ왕근(王根)이 황제의 측근으로 중용되었겠으며 또 어떻게 그들이 권력을 남용할 수 있었겠는가? 그결과로 신망(新莽)의 화(禍)가 또한 어디서부터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신망의 화는 서한 말에 원제의 외가친척인 왕망(王莽)이 권력을 찬탈하고 국호를 신(新)으로 고치고 황제에 등극하여 한왕조가 멸망한 사건을 말함)
역사의 전말이 이러하다면 원제(元帝)의 처사는 과연 후세의 모범이 되겠는가? 진실로 그렇지 않다. 삼공(三公)을 기용(起用)하는 중요한 인사문제를 측근 환관(내시)에게 조언을 구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 하겠다. 비록 고요(皐陶)ㆍ기(夔)ㆍ직(稷)ㆍ우(禹)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얻어서 임용하게 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실수를 대신 보상할 방법은 족히 없었을 것이다(결과적으로 황제의 외척에 의해 국위를 찬탈당하여 왕조가 망했기때문이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군자가 사람을 취함에는 부분적인 것을 고려한다.(雖然君子之取人也 以節 수연군자지취인야 이절)
따라서 원제가 환관의 말에 의지하여 야왕을 등용안한 것과 같은 경우에도, 군자는 이 또한 바른 도리의 선(善)한 부분만을 취할 따름이다.(번역글 필사하여 옮기면서 개인적인 이해를 돕기위해 문맥에 맞게 문장을 약간 다듬다. 참조는 한국고전번역원의 홍세주역을 참고하였다.)
-홍석주(洪奭周, 1774년 ~ 1842년), '서한 풍야왕전기에 붙이는 글(書漢書馮野王傳後 서한서풍야왕전후)',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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