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악(惡)을 지극히 미워함 / 이익

공자(孔子)가 “악(惡)을 미워하기를 항백(巷伯)과 같이 해야 한다.*” 했는데 이는 지극히 미워한다는 말이니 본받을 만하다. 무릇 누구든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만 모름지기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음)하게 한 다음이라야 참으로 옳고 그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항백)가 과연 참소를 만나 궁형(宮刑, 생식기를 제거당하는 신체 형벌)을 당한 사람이라면 혹 사사(개인적인 감정 혹은 원한)가 없지 않았을 것인데 군자(君子)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취했을 것인가?

대개 시인(寺人, 임금 가까이서 일상의 수발을 드는 사람, 즉 환관, 내시)은 임금에게 친근한 때문에 무릇 위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밑에서 하소연하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소인이 아첨하는 말로 하소연하여 남을 중상하는 것과, 군자가 억울한 모함에 빠지게 되는 그 정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이 시를 지어 두루 경계하도록 하였으니 그의 어짊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 중에 “양원(楊園)의 길은 묘구(畝丘) 쪽으로 비스듬하게 되었다.”란 것은 무슨 뜻일까? ‘의(猗)’란 편벽하다는 뜻으로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 소인이 꾀를 부릴 때면 반드시 환관(宦官)과 궁녀(宮女)를 비밀리에 통하게 된다. 마치 벌집과 개미 구멍처럼 아늑한 남모르는 곳에 굽은 길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양원은 한 묘구의 구석진 곳에 있다.”라는 말은 바로 남모르게 다니는 소인의 자취를 가리켜서 한 이야기인데, 그 교묘한 말로 남을 모함하는 태도를 꼭 그대로 묘사하고, 또 끊임없이 오가는 길을 환히 보는 듯이 지적하였다.

이 시를 읽는 사람마다 거의 경계심을 갖도록 하였으니 그 뜻이 참으로 절실하다. 진실로 이런 사람에게 사실을 밝히게 한다면 제아무리 주둥이가 길고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할지라도 무슨 수로 거짓말을 덮어 변명할 수 있겠는가?

한(漢) 나라 여강(呂强)과 명(明) 나라 회은(懷恩)과 우리나라 김처선(金處善) 같은 사람도 있으니 그러한 사람이 가끔 없지 않았다. 이들은 환관이었지만 양심에 가책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역자 주]
1. 악 미워하기를 항백(巷伯)과 같이 해야한다 : 이 말은 《예기》 <치의(緇衣)>에 “子曰 好賢如緇衣 惡惡如巷伯 爵不瀆而民作愿刑不試而民咸服”이라 하였음. (옮긴이 주:  풀이하면, “선하고 어진 사람(현인)을 좋아하기를 <치의편>처럼 하고, 악인을 미워하기를 <항백편>처럼 하면, 관원이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조심할 줄 알게 될 것이며, 형벌을 시험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모두 복종할 것이다.")
2. 항백(巷伯) : 주(周) 나라 때 환관(宦官)의 별칭. 《시경》소아(小雅)의 편명. 유왕(幽王)을 나무란 시. 7장으로 된 끝장에 “楊園之道 猗于畝丘 寺人孟子 作爲此詩 凡百君子 敬而聽之”라 하였음.(옮긴이 주:  풀이하면, “버들가지 늘어진 낮은 땅의 길이 평지가 아닌 언덕으로 치우쳐 나 있구나. 한갓 환관에 불과한 맹씨가 이 시를 짓노니, 무릇 군자들은 귀기울여 듣기를 바란다.")
3. 여강(呂强) : 자는 한성(漢盛). 후한(後漢) 말기의 환관. 어려서 소황문(小黃門)이 되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먼저 측근의 탐관오리를 숙청할 때 강청하여, 당인(黨人)을 구한 공이 있다. 뒤에 중상시 조혼(趙惲)의 무함에 걸려 자살했다.
4. 회은(懷恩) : 명 헌종(明憲宗) 때 환관. 헌종이 만 귀비(萬貴妃)에게 혹하여 태자(太子)를 바꾸려고 하자 굳이 간하다가 배척당했는데 효종(孝宗)이 즉위한 후 다시 복직, 죽은 후에 현충사(顯忠祠)를 짓고 사액(賜額)하였음.
5. 김처선(金處善) :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환관. 연산군의 음란이 극에 달했을 때 처용희(處容戱)를 같이 추자는 명령을 거절하다가 다리와 혀를 잘리는 참혹한 변을 당하고 죽었음.

-이익(李瀷, 1681~1763), '항백 오악(巷伯惡惡)' , 『성호사설(星湖僿說) 제21권/경사문(經史門)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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