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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도 내가 없고 내 뒤에도 내가 없다

석록(石綠, 공작석, 녹색)으로 눈동자를 새겨 넣고 유금(乳金)으로 날개를 물들인 나비가 붉은 꽃받침에 앉아 펄럭펄럭 긴 수염을 나부끼고 있다. 영악한 날개깃을 드러나지 않게 엿보며 총명한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도모하다가 갑자기 때리고 문득 낚아챘지만 살아 있는 나비가 아니요 저 그림속의 나비였도다. 아무리 진짜에 가깝고 몹시 닮아 거의 같다고 해도 모두 제이(第二)의 위치에 자리할 뿐이네. 또한 진짜에 가깝고 몹시 닮아 거의 같은 것이 어디에서 기원(起源)하는지 살펴보라! 본바탕을 먼저 엿보아야 가짜로 인해 구속당하지 않으니 만 가지 종류의 온갖 사물은 이 나비의 비유를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병효(讚之一 植眞): 진짜를 심음》 인간의 큰 근심은 혼돈이 뚫린 태초부터 발생하여 꾸미고 수식함은 넘쳐나고 진..

현명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것

고매한 사람이 속인(俗人)을 대하면 졸음이 오고, 속인이 고매(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훌륭함)한 사람을 대해도 졸음이 오는 것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인데, 속인이 조는 것은 비루하여 말할 것이 없거니와 고매한 사람이 조는 것은 어찌 그리 마음이 협소한지. 만일 참으로 고매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졸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능히 남을 용납하기 때문이다.한(漢) 나라 문장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은 용납했고, 송(宋) 나라 문장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했고, 명(明) 나라 문장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또한 꾸짖거나 원수처럼 여긴 사람도 있었으니, 원미(元美)의 무리는 업신여긴 사람들이고 중랑(中郞 원굉도(袁宏道))의 무리는 꾸짖은 사람들이며 수지(受之 전겸익(錢謙益))의 무리는..

섭구벌레(섭구충)

박미중(朴美仲 미중은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자)이 나와 한 마을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글을 이야기할 때 아취가 혹 서로 비슷하였다. 문(文)은 해학을 써서 적이 자기 마음을 나타내곤 하였다. 일찍이 나에게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여 서신이 세 차례나 왔으므로 내가 승낙했다가, 다음 날 서신을 보내 찾아오며 이르기를, “귀와 눈은 바늘구멍 같고 입은 지렁이 구멍 같으며 마음은 개자(芥子, 겨자씨와 갓씨)만하니, 대방가(大方家, 문장이나 지식 과 학술이 두루 뛰어난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알맞을 뿐이다.” 하였더니, 미중이 나의 서신 사이에 주(註)를 달기를, “이 벌레의 이름이 무엇인지 박물자(博物者 모든 사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는 해명하라.”하였다. 내가 또 서신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