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
옛날에 장주(莊周 장자(莊子))가 그림자가 말을 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괴이하다고 했고, 미불(米芾)이 ‘돌 어른〔石丈〕’이라고 부르자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그림자는 말을 하지 않고 돌은 어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매화와 말하면서 매화를 ‘군(君)’이라고 하니, 나는 과연 괴이하고 미쳤단 말인가. 군자는 괴이하고 미친 짓을 하지 않으니, 나는 과연 군자가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장주와 미불이 소인이 아니니, 나는 과연 장주와 미불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매군(梅君)’과 더불어 말한 것을 ‘연어(然語)’라고 이름 붙이니, 사람들이 나를 괴이하고 미쳤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나로 하여금 괴이하고 미치게 하는 자는 또한 누구인가. - 이상은 제사(題辭, 머리글로 글의 이해를 돕기위해 쓰는 말)이다. -(이하 부분생략, 발췌)
자화(子華 위백규의 자(字))가 “남에게 죄를 지으면 오히려 용서를 빌 수 있지만, 자신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매군(梅君, 매화를 의인화하여 마치 또 다른 이성적인 자기와 대하듯 대화하고 있음)이 “이 때문에 홀로 있을 때를 삼갑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군자는 자기로서 자기를 삼기 때문에 자기의 사욕을 이겨 자기를 이루고, 소인은 자기로서 자기를 잊기 때문에 자기를 죽여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소인은 천륜(天倫)의 지극한 정이 없어 부부 관계에서는 남녀의 그리움뿐이고 자녀에 대해서는 금독(禽犢 짐승)의 사랑뿐이며 형제 관계에서는 이것마저 없으니, 어떻게 좋아하며 살겠습니까. 하물며 종당(宗黨, 일가친척 집단) 사이의 경우나 붕우 사이의 경우이겠습니까.”라고 하니, 매군이 “예. 소인은 젖을 끊으면 부모를 원망합니다. 또한 어머니만 사모하고 아버지는 사모하지 않는 자는 부모에 대해 젖 먹여 길러 준 그리움만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나이가 되면 이미 그것마저 잊어버리는데도 가르칠 줄을 모르니 진실로 금독(짐승)일 뿐입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천지만물을 한몸으로 삼는 자는 착한 사람이 됨을 잃지 않지만, 제 한 몸을 몸으로 삼을 뿐이면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하늘은 그 큼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오래되어도 떨어지지 않고, 성인은 그 덕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덕의 광대함이 하늘과 짝하며, 군자는 그 선함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선함이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배우는 자는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날로 새로워집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오직 크기 때문에 스스로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자신의 그릇됨을 스스로 가리는 자는 남의 작은 잘못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고, 남의 선함을 시기하는 자는 남이 면전에서 자기를 칭찬해 주는 것을 기뻐합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남이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해 면전에서 감사하면서 지나치게 다정한 체하는 자는 반드시 배반을 잘하는 자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려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선하지 않은 면이 있더라도 적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참으로 시기하여 해치는 마음이 없다면 온갖 선이 모일 것이니, 어찌 단지 선하지 않은 데가 적을 뿐이겠습니까.”라고 했다.
자화가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마찰하여 불을 일으키는 것은 열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며, 닭이 비 오는 밤에도 제때 우는 것은 앎이 전일(專一, 마음을 한결같이 오직 한곳에만 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이 때문에 하루의 게으름은 평생 백 년 동안의 근면함을 무너뜨리고, 정밀하지 않은 박학(博學)은 장점으로 취할 만한 재능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천명(天命)을 모르는 사람은 늙을수록 더욱 어리석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천명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꽃은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소금은 볶지 않으면 짠맛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명예를 구하는 자는 내실 있는 행동이 없고, 항상 안일하게 지내는 자는 성취한 재주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만족할 줄 모르고 남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는 이미 남에게 줄 수 없는 자이고, 남이 끝없이 자기를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는 자는 이미 남을 섬길 수 없는 자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마음속에 시기심을 품고 있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면전에서 남이 아첨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몰래 해치는 자는 반드시 실상에 지나치게 남을 칭찬합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군자가 남의 선행을 인정하는 것과 소인이 남을 칭찬하는 것은 화(和)와 동(同), 교(驕)와 태(泰)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과 같습니다. 남의 선행을 인정하는 말은 평이하면서도 즐겁고, 면전에서 칭찬하는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합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후하게 해야 할 사람에게 박하게 하는 사람을 보고서 오히려 그가 나에게는 후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 역시 후하게 해야 할 사람에게 후하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복을 얻는 것을 중히 여기는 자는 작은 선행이 있더라도 소인일 뿐이며, 지킴이 간략한 자는 잘못이 있더라도 군자의 무리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천명(天命)을 알면 지킴이 간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인의 인색함은 군자의 지킴이 간략함과 비슷하지만, 인색한 자는 반드시 교만하니, 어떻게 지킴이 간략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자화가 “사람은 참으로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만일 아래로 세상 풍속을 가까이하는 국량이 없다면, 반드시 비난이나 칭찬에 흔들리게 되어, 실제 뜻이 확립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남이 해내기 어려운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자는 그 마음에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나는 잘못이 없다고 스스로 믿는 자가 있으니, 이런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 도리에 함께 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남에게 충(忠)을 다하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은 남에게 충을 다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자화가 “세상 사람들이 과거에 합격하려는 욕심, 좋은 집안과 혼인하려는 욕심, 좋은 자리에 장사 지내려는 욕심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니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그들이 또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라고 하니, 매군이 “세 가지 욕심은 망녕된 욕심으로, 하늘과 사람의 이치가 모두 상실되게 만들 것이니, 도리어 벽을 뚫거나 담을 넘는 좀도둑이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목마르면 마셔야 하는 천성을 잃지 않는 것만도 못합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성현(聖賢)이 이른바 ‘하늘’이라고 한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것을 가리킬 뿐인데, 사람들은 참으로 한 사물이 있어 주재하는 것으로 여겨 드디어 선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게을러지게 합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스스로 속이지 않아야 진정 하늘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반드시 무슨 일을 하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라는 말은 거의 성인의 말씀이니, 만사에 두루 통하여 하는 일마다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작게는 걷거나 자고 먹는 일이나 더럽게는 기침하고 재채기하거나 대소변을 보는 일도 따르면 이롭고 어기면 패망합니다.”라고 했다.
자화가 “바라는 것 없이 선행을 하는 것은 음덕(陰德)이고, 이유 없이 복이 모이는 것은 몸을 망치는 재앙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예.”라고 했다.
자화가 “성인은 사람의 일을 다해 하늘의 도리를 확립하고, 군자는 하늘을 믿어 사람들을 수양하게 하지만, 소인은 사람들을 패망하게 하여 하늘을 욕되게 합니다. 하늘에 대한 믿음에 집착하면 원망이 생기고, 하늘을 욕되게 함이 극에 달하면 하늘이 결정을 내립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믿음은 나에게서 비롯되니, 어찌 원망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자화가 “남의 집에 도둑질하려고 들어갔는데 집주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기뻐하며 ‘하늘이 나를 도왔다.’라고 하고, 살무사가 사람을 노려보다가 돌멩이에 맞으면 원망하며 ‘하늘은 믿을 수 없다.’라고 할 것입니다. 얼마 뒤에 재산을 잃은 자는 근심하면서 ‘하늘이 어찌하여 나에게 해를 끼치는가.’라고 하고, 살무사의 독을 피한 자는 기뻐하며 ‘하늘이 참으로 나를 도왔다.’라고 할 것인데, 하늘이 과연 그리한 것일까요? 어디에서 맞는 바〔中〕를 취해야 합니까?
군자는 이를 보고서 선(善)을 행하는 데 더욱 힘쓰지만, 소인은 이를 통해서 악한 짓을 하는 데 더욱 꺼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매군이 “도둑질이 노련하다면 밤마다 하늘이 돕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살무사는 독을 쏘았다면 죽음에 이르러도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의 집에 훔치려고 들어간 사람의 기쁨이나 살무사의 원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소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재산을 잃어 근심하는 자는 재산의 간수를 게을리한 것을 더욱 후회하고, 살무사의 독을 피해 기뻐하는 자는 다행이 면한 것을 경계해야 마땅하니, 하늘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것은 군자가 선을 행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했다.(이하 생략)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원지(原旨 근본적인 뜻을 돌이켜 확인함)'중에서 발췌, 『존재집 제20권/잡저(雜著)/연어(然語)』-
▲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서종태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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