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誠意)와 스스로 속임(自欺)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誠意 성의).’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호색을 좋아하듯 해야 하니, 이를 두고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 자겸)’고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 있을 때는 불선한 짓을 하되 하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하다가, 군자를 본 뒤에 시치미를 떼고 불선을 감추고 선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폐와 간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으니 그렇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를 두고 ‘마음이 성실하면 밖으로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증자가 말하기를 “열 눈이 보고 있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으니, 참으로 무섭구나!”라고 했다.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여유롭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대학 6장)

맹씨(孟氏 맹자(孟子))가 세상을 뜬 뒤부터 유학(儒學)의 도(道)가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으니, 단지 성의(誠意,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뜻)의 공부가 전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모두 천하를 차지하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할 뿐 어찌 천하를 평안하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던가.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천하를 얻는 근본임을 알지 못했고, 이미 치국(治國)이 천하를 얻는 근본임을 알지 못했으니 어찌 조금이나마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데 마음을 썼겠는가.

제가(齊家)가 근본임을 알지 못했으니, 어찌 내 몸이 나라와 집안의 근본임을 알고 내 마음이 내 몸의 근본임을 알 수 있겠는가. 순경(荀卿 순자(荀子))이나 동자(董子 동중서(董仲舒)) 같은 사람들은 대유(大儒)라고 제일 자처했고 정심(正心)이나 수신(修身)에 대해 의론이 있었지만, 언제 일찍이 ‘성의(誠意)’ 두 글자가 우리 인간의 명문(命門 명치)이고 탯줄이라는 것에 대해서 눈길이나 주었는가. 

오직 증자가 공자의 종지(宗旨)를 이해하고, 천하의 만물을 한몸으로 여기며 천하를 평안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려서 만물이 각각 자신의 자리를 찾도록 할 원리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라의 근본이 되고, 집안의 근본이 되는 것을 미루어 몸에 이르렀다. 몸의 근본은 또 마음이기에 끝까지 미루어 정심에 이르렀으니, 지극하고도 극진하다. 또다시 마음의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을 꼼꼼히 관찰했다. 

고요함을 주로 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는 지극히 미묘한 경지에 ‘성의(誠意)’ 두 글자를 더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의(意)’ 자는 뱃속에 감추어져 몇 겹의 피부와 뼈로 덮여 있으므로 자신도 눈과 귀로 보거나 들을 수 없고 아내나 남편, 아버지와 자식 간에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움직임은 지극히 미묘하여 발현되어도 현상이 없지만, 천지가 뒤집어지고 나라와 몸이 망하거나 죽는 기미는 단지 여기에 있다. 

비유하자면 천 길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과 같으니, 비록 즉시 추락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만 기울어도 죽고 조금만 돌아서면 살 것이다. 이야말로 천지가 전율하고 귀신이 지켜보는 상황이다. 오직 진심을 가진 대장부만이 한쪽은 밑바닥 없는 구렁텅이를 보고 한쪽은 평온한 땅임을 실제로 보고 판단하여,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는 맹렬히 발꿈치에 힘주고 척추를 꼿꼿이 세울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몸을 돌려 실제 땅을 밟게 되면 충분히 백 년을 장수할 사람이니, 맹자 이상 몇몇 성현이 모두 이런 사람이다. 

이럴 때에 더러 조금이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추락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또 어떻게 되나 보자 하는 마음에 한 번의 시도조차 구차하게 미루고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 힘이 빠져 점차 피로해지고 눈이 저절로 어지러워 홀연히 비껴 부는 바람에 부모가 애지중지 길러 준 8척 몸뚱이가 만 길 낭떠러지에 거꾸로 추락할 것이다. 뼈가 부서지고 살이 뭉개지며 혼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니, 예로부터 군자답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러했다. 

공자 문하 70제자 중 누군들 ‘정심(正心)’을 말하지 않았는가. 오직 증자만이 여기에 성실하지 않으면(‘여기’란 의(意)이다.), 정심에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성의(誠意) 공부가 정밀하고도 더욱 정밀해지면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에 나아가 마음이 처음 발동되는 곳을 살펴 그 선(善)과 불선(不善)을 알게 된다. 

성(性)이 발동되어 정(情)이 되고, 정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 의(意)이다. 정은 형기(形氣)에 속한 것으로 성인도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성인의 정은 형기에 속하는 것이라도 모두 이치에 마땅한 것이며 사사로움이 없는 까닭에 정도 순선(純善)하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정에 선, 불선이 있다. 선은 해야 하고 불선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이 처음 발동될 때는 몸속에 숨겨져 있어서 자기 혼자만 안다. 그 때문에 스스로 너그러워져 “불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데 무슨 상관이랴.”라고 하면서 다시는 경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사물이 형기에 하루에도 수만 번 접촉하므로 점점 선한 것은 적어지고 불선한 것은 많아지게 된다. 

물(物)은 물(物)과 만나면서 야기하고 의(意)가 의(意) 때문에 자라나면 필경 마음에 하나의 진실한 선(善)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긍지를 내세우니 모두 헛된 과장일 뿐이다. 결국 끌어다 덮고 재빠르게 가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善)을 과시하지만, 실제로는 구차하고 가로막혀 마음은 위축되고 몸은 오그라들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몸을 수양할 수 있겠는가. 

증씨(曾氏 증자(曾子))는 병통의 뿌리를 끝까지 연구하여 ‘스스로 속임〔自欺〕’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欺)’라는 글자는 좋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은 그래도 속일 수 있지만 ‘스스로 속임’이라는 말은 보통 생각으로 따져 보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自〕’란 ‘나〔我〕’이고, 나에게 가려지게 되어 마침내 스스로 속이니, 이는 스스로 자기 몸을 버리는 짓이다. 스스로 자기를 버린다면 누군들 그 사람을 버리지 않겠는가. 천하 사람들이 버리는 존재가 될 뿐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왜일까. 대개 그것은 하늘에서 부여한 밝음이 가려지고 어두워지며 사사로운 뜻이 막아 버려 막힌 귀에는 금방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장에서 벌건 대낮에 약탈하면서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아서이다. 

장교(莊蹻, 춘추전국 시대의 초나라 반군 지휘자로 기족(企足)이라고도 한다. 후세 사람들에 의해 도척(盜跖)과 함께 도적의 대명사가 되었다.)나 도척(盜蹠) 같은 자는 밭에서 금을 주웠다가 버리는 데에서 잘못되어 생기고, 왕망(王莾)이나 동탁(董卓) 같은 자는 한밤중 궁궐 앞을 지나갈 때 수레에서 예법을 차리는 데에서 잘못되어 만들어진다. 생각 하나하나가 이렇듯 두렵고, 스스로 속이는 것이 이토록 극심한 재앙이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재아(宰我)가 비단옷을 입고 쌀밥을 먹는 것에 대해 편안하다고 했던 말은 모르고 한 말이기는 해도 속이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가르쳐서 깨닫게 해 줄 수는 있었다. 양광(楊廣)이 겉으로는 죽에 쌀 두 줌을 먹으면서 몰래 삶은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이는 알고도 스스로를 속인 것이니, 결국 시역(弑逆)으로 끝났다. (관녕(管寧)이 밭을 매다가 금을 보고도 돌아보지 않은 것은 성실한 의(意) 때문이었으니, 이는 청렴의 성인이다. 거백옥(蘧伯玉)이 한밤중에 궁궐 문 앞에서 수레에서 내렸던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은 것이니, 이는 공경의 성인이다. 화흠(華歆)은 황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헌제(獻帝)의 옥새 끈을 풀었는데, 밭을 매다가 금을 주웠을 당시 한번 성실하지 못했던 마음이 가져온 불행이었다. 거백옥은 60세에도 변화했으니, 이는 한밤중에 수레에서 내렸던 공부이다.)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 속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호색(好色) 및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호색은 실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이고, 냄새를 싫어하는 것도 실제 마음으로 싫어하는 것이지, 터럭만큼도 다른 사람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한사코 하려고 하고 한사코 없애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善)을 바라고 불선(不善)을 제거하기를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의(意)가 저절로 진실해질 것이다. 가령 옳지 못한 재화나 여색 같은 것이 눈앞에 있더라도 내 마음이 잔잔한 물처럼 고요하고 생각의 실마리가 명쾌하며 맑게 갠 하늘의 빛처럼 환하게 내다보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의가 성실한 상태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싹트면 바로 그 잘못됨을 알아채고 끊어 내야 한다. 이는 아직도 금지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니 아직 의가 성실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금지 단계에서부터 익숙히 하여 한 번, 두 번 금지하다가 오래되면 없어지기에 이를 것이다. 

대순(大舜)의 “마치 평생토록 그럴 것 같았다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라는 말은 성의(誠意)의 가장 지극한 효과였다. 배우는 사람은 이런 것을 안 뒤에야 이런 단계의 공부를 논의할 수 있다. 성탕(成湯)이 새와 짐승조차도 편안하게 했던 일이나, 주공(周公) 때 거센 비바람이 없던 일은 모두 이 성의(誠意)의 효과이니, 의가 성실하면 하늘과 하나가 된다. 

또한 배우는 사람들이 효과를 얻었을 때의 증후를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자겸(自慊)’ 두 글자를 언급했다. 여기의 ‘겸(慊)’ 자가 나타내는 모습은 터득하여 살핀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표현할 수 없다. 옛사람의 시에, "밝고 깨끗한 구름 사이 달 / 瑩淨雲間月 또렷한 비 온 뒤 저 산이여 / 分明雨後山 마음속 스스로 부끄러움 없어야 / 中心無所愧 이를 대하고 얼굴 펼 수 있으리라 / 對此敢開顔 "라고 했는데, 이 시가 ‘자겸’의 모습을 비슷하게 표현했다. 

만족하는〔慊 겸〕 까닭에 마음이 절로 넓어지고 몸에 절로 살이 오를 것이니, 그 얼마나 쾌활한 남아인가! 호연지기가 여기에서 나오니, 《주역》에 “후회와 인색을 근심하는 것은 나뉘는 데 있다.〔憂悔吝 存乎介〕”라는 말, 《서경》에 “기미마다 삼가라.〔惟幾〕”라는 말, 《시경》에 “생각에 거짓이 없다.〔思無邪〕”라는 말은 성의(誠意) 공부이다. “하늘의 명이여 아, 화목하고 그침 없어라!〔維天之命 於穆不已〕”라고 했고, 요(堯)가 천명을 받은 일, 순(舜)의 참되고 독실함, 탕(湯)의 능히 한결같음, 문왕(文王)의 순수함, 무왕(武王)이 두 마음을 갖지 않은 일은 성의의 지극한 공력이다. 

스스로 속이는 것보다 심한 화근은 없고 스스로 속이는 것보다 혹독한 재앙은 없다. 하늘이 노하고 사람이 원망하는 일은 전적으로 스스로 속이는 한 가지 마음에 달려 있다. 다만 사람이 사사로운 의도에 가려 스스로 속이는 짓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망치고 집안에 화를 입히며 종묘가 엎어지는데 그저 이르러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왕척직심(枉尺直尋)*’ 네 글자는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독한 빌미이다. 스스로 속인 대표적인 사례는, 왕망(王莾)이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청했던 일과 조조(曹操)가 동작대(銅雀臺)를 만들고 궁녀들에게 향을 나누어 주라고 했던 일이다. 사람마다 이 일을 언급하지만, 그 근본은 어두운 방에서 지녔던 일념으로 부귀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막을 수가 없어서 점차 ‘왕척직심’과 같은 꾀가 생겼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이 점이 성인이 “한 가지라도 불의한 일을 저질러 천하를 얻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行一不義而得天下 不爲〕”라고 말했던 이유이다. 

정자와 주자 선생은 남월왕(南越王)이 황옥(黃屋)과 좌독(左纛)을 한 일을 자기(自欺)의 비유로 들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을 밖에서 바르는 것〔窓從外糊〕’이 곧 ‘자기(自欺)’임을 이해하는 것이 공부에 가깝고 절실한데 사람들은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창을 밖에서 바르려고 하는 하나의 생각이 하늘을 뒤집고 땅을 뒤엎는 근원이 된다. (주자가 창에 바른 종이가 가지런하지 않은 것이 보기 싫어서 고치라고 했더니 문인이 “좋아 보이려면 밖에서 바르면 됩니다.”라고 했다. 선생이 정색을 하고 “어찌 스스로 속이는가”라고 했다.)

마시고 먹는 일은 인정상 자기에게 절실한 것이니, 어찌 스스로 속이는 일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보리 겨로 만든 떡을 먹는 사람은 거기에 모래가 들어 있는 것이 싫어서 씹을 때도 이로 씹지 않고 우물우물하다가 덩어리째 삼킨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사람은 그 거친 신맛이 싫어서 씹지 않고 한꺼번에 삼킨다. 이는 모래나 신맛을 ‘한 자를 굽힌다.〔枉尺〕’라고 생각하며, 배를 채우는 일을 ‘한 길을 편다.〔直尋〕’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굶주린 사람은 콩잎으로 모래를 싸서 삼킨다. 모래가 뱃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누구나 다 알 터인데도, 아주 짧은 순간에 한 길을 펴려는 나머지 필시 죽음에 이르는 것에도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다. 

만일 맹자(孟子)가 한 자를 굽혔다가 결국 세상의 화란에 말려들었다면, 그는 모래를 삼킨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깊은 밤중에 애걸복걸해서 겨우 관직 하나를 얻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어버이가 살아 있을 때는 조그마한 성의도 없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산소 자리를 찾아다니면서 입만 열면 “백골이나마 편하셨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그런 사람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못하는 악행이 없을 것이다. 

성의(誠意)에 관한 전(傳)이 ‘치지(致知)’나 ‘정심(正心)’과 섞이지 않고 단독으로 하나의 전이 된 의미에 대해서, 배우는 사람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가령 주상(主上)을 뵈려는 사람은 반드시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가야 하고, 숭례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정표를 살펴야 한다. 이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사람이 반드시 먼저 뜻을 성실하게 하며,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하는 것과 같다. 숭례문은 주상을 뵙는 정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길을 가리켜 주는 사람은 길 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이정표를 살피게 하고 한강(漢江)을 건너면 한양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바로 격물치지 공부이다.) 그런 뒤 또 반드시 정신을 차려 눈동자를 크게 뜨고 보면, 많은 널찍한 길머리에 허다한 기와집과 담장 속에 높은 이층 건물이 있고 백척의 높은 성곽으로 경계를 짓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를 들어가면 한양이고 아직 들어가지 않으면 지방인데, 힘을 다해 용맹정진하면 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뒤에야 숫돌처럼 평탄하고 넓은 길이 펼쳐지며 아홉 대문이 훤히 열린다. 어깨를 펴고 두 손을 모은 뒤 천천히 나아가되 다리 힘을 가볍고 굳건히 하여야만 곧 성인(聖人)이 붉은 구름에 앉아 차분하게 나에게 명령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이 시에서 말하는 ‘제(帝)’는 문왕(文王)이다.)

그래서 이 문이 한양으로 바로 들어가는 제일 중요한 입구이다. 만약,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이 관례에 따라 쓰기를 “이른바 숭례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이정표를 살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주상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숭례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묻는다면, 어찌 헐후어(歇後語, 뒤에 이어지는 말을 줄이거나 잘라버린 말)가 아니겠는가. 

장(章) 아래 주(註)에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고, 구차하게 스스로 속인다.”라는 말은, 바로 숭례문 밖에서 미루고 머뭇거리며 방황하다가 곧장 석문(石門 남대문)을 알아보고 달려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때때로 장(醬, 된장, 간장) 파는 가게를 잘못 엿보기도 하고 건어물 가게로 향하기도 하면서, 구차하게 자신을 안심시키며 “내가 이미 한양에 도착했으니, 옆 사람이 어찌 나에게 건어물 가게나 장 파는 가게를 잘못 들어왔다고 여기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한양 말씨와 복식으로 산뜻하게 바꾸고, 사람들에게 주상은 옥련(玉輦)을 타고 고관은 금관(金冠)을 쓴다고 떠벌일 뿐이다. 

그렇지만 용루(龍樓)나 봉궐(鳳闕), 종묘(宗廟)나 백관(百官)의 아름다운 모습은 끝내 보지도 못하고 결국 여관방에 기숙하는 꼴을 면치 못한다. 죽기에 이르러 자신을 위로하기를 “내가 본디 한양에 갔었다.”라고 할 것이니, 이 어찌 자신을 속이는 짓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스스로 한양에 갔었다고 말해도 어느 누가 믿겠는가. 그가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속마음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또 주자는 “혹시 이미 밝아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삼가지 않으면 밝아졌던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한 구절은 몸으로 실천하고 마음으로 터득하여 이러한 실제를 정말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한양에 간 사람이 이미 남대문 가는 길을 분명히 알았더라도, 마음이 느슨해지고 의지가 산만해져서 떡집을 기웃거리고 잡화상을 훔쳐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무방하다고 스스로 여기며 청파(靑坡) 거리(남대문 밖 지명)를 배회한다면, 이는 앞서 살피고 물어서 분명히 알았던 많은 노정(路程)이 모두 자기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배우는 사람이 여기에 마음을 다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여기에서의 ‘의(意)’ 자가 갖는 위상은 매우 은미하고, ‘성(誠)’ 자의 공부는 지극히 정밀하다. 지극히 은미하되 온갖 사물에 수응하는 근본이 되고, 지극히 정밀하되 천지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을 기르는 본체가 된다. 정밀하고 은미한 데 소홀한 사람은 끝내 성인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성’ 자의 의미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니, 진정 진(眞)이며 실(實)이다. 의에 불선(不善)한 것이 있으면서 밖에서 그것을 가리는 것이니, 과일의 씨앗에 비유하자면 그 씨앗이 이미 썩었는데 밖의 껍질은 그대로 완연한 것과 같으니, 이는 부실이지 진실이 아니다.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한다.〔富潤屋〕’라는 저 평범한 구절을 빌려서 ‘덕성이 몸을 윤택하게 한다.〔德潤身〕’라는 말을 불러일으켰으니, 《시경》에 나오는 흥체(興體)와 같다. 대개 마음이 넓어지고 몸에 살이 오르는 것이니, 이것이 군자의 무한한 쾌락이다. 그러므로 형용을 찬탄하면서도 문체가 자연스럽게 《시경》의 흥체가 되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읊으며 감흥하게 한다. 

재화가 집안에 채워지므로 집이 저절로 윤택해지고, 덕(德)과 의(義)가 마음에 채워지므로 몸이 저절로 윤택해진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부족하면 부실해져서 집이든 마음이든 윤택해지지 않는다. 겸(慊)은 쾌(快)이며 족(足)이니, 충분하면 채워져서 저절로 윤택해진다. 마음이 넓어지고 몸에 살이 오른다는 말은, 기상이 위축되고 시치미 떼는 모습의 반대이다. 이상은 전(傳) 6장(章)이다. 

*[역자 주] 왕척직심(枉尺直尋) : 한 자〔尺〕를 굽혀서 여덟 자〔尋〕를 편다는 뜻으로, '한번 지조를 굽혀 공로를 세우는 것'을 비유한다. 맹자는 “자기 몸을 굽히고 남을 바르게 하는 법은 없다.”라고 하여 이를 비판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위백규(魏伯珪, 1727~1798), ' 대학(大學) [전(傳) 6장(章)]', 존재집(存齋集) 제5권/독서차의(讀書箚義)-

▲원글출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김건우 (역) ┃ 2013

※옮긴이 주: 왕척직심(枉尺直尋)은  '한 자(尺)의 길이를 굽혀서 여덟 자 길이로 편다'는 뜻으로, '조그만 양보로 큰 이득을 얻거나 작은 어려움을 참아 큰일을 이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다. 이 고사성어만 딱 떼어 놓고 보면 세상살이에서 합리적인 처세의 방법으로 더할나위없이 좋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온 전체 내용을 놓고보면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고사성어에는 이런 류가 제법된다. 맹자 滕文公章句下 제1장이 그 출전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맹자의 제자인 진대가 맹자에게 '왕척지심'의 논리를 들어 고고한 뜻을 굽혀서라도 후일을 위하여 권력자인 제후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떠냐고 은근슬쩍 권유한다. 하지만 맹자는 단호히 거부하고 오히려 꾸짖는다. "설령 제후가 원해서 부를지라도 그 부름이 옿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 의당한 일인데 하물며 정당한 방식으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 가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한 일이다. 또한 무릇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고 하는 것은 이익(利)을 따져서 말하는 것이니 만일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여덟자를 굽혀서 한 자를 곧게 펴서 비록 이익이 된다하더라도 어찌 그리하겠으며, 소인배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을 하여 비록 짐승을 많이 잡아 언덕처럼 쌓아 올릴 수 있다할지라도 말 모는 자조차도 활 쏘는 자에게 아첨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만약 도(道)를 굽혀서 그들을 따라 간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대가 지나쳤도다. 자기를 굽히는 자 가운데 능히 남들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자가 아직 없었다."라고 진대를 꾸짖었다. 논어에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말이 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는 공자가 말년에 쓸쓸히 귀향하면서 읊은 '의란조'(猗蘭操)를 차운하여 공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지은 그의 시 '의란조'(猗蘭操)에서 '군자의 괴로움은 군자가 지킨 지조에 있다'(君子之傷,君子之守/송명호역)라고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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