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라는 ‘무치지치(無恥之恥)’ 네 글자는 종신토록 외워서 반성할 만한 글이다. 성현의 도는 다만 부끄러움을 면하는 방법이다. 세밀하게 공부하면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갈 수 있고, 공효가 극진해지면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럽지 않으며, 땅을 굽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진심 상 6장]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다.”라는 ‘무소용치(無所用恥)’ 네 글자를 읽노라니 사람으로 하여금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그 병의 뿌리는 바로 ‘스스로 속임〔自欺〕’이다.[진심 상 7장]
배우는 자는 향원(鄕原)이 덕(德)의 적(賊)이라는 사실을 깊이 잘 안 연후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진실로 “엄연히 세상에 아첨하는 자〔閹然媚於世也者〕”가 아니라면 절대로 온 고을 사람들이 원인(愿人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할 리가 없다. *삼묘(三苗)와 공공(共工) 같은 자가 또한 우(禹)를 기리고, *도척(盜蹠)과 소정묘(少正卯) 또한 공자를 칭송하였다면, 우 임금과 공자가 어찌하여 성인이겠는가?
만고에 악인이 없었던 적은 없었으니, 악인이 좋아하지 않은 연후에야 군자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여러 소인에게 노여움을 받았고, 문왕은 오랑캐들의 성냄을 끊지 못하셨다. 공자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을 사람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하다. 만약 고을 사람 모두가 원인(愿人)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는 소인 중에 더욱 심한 소인이다. 이들은 거처할 때에는 충신(忠信)한 것 같고 행실이 청렴결백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벽을 뚫고 담을 넘는 좀도둑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진심 하 37장]
보고 알고, 들어서 아는 것 모두 ‘지(知)’로써 말한 것이니, 모르면 행할 수가 없다. 들어서 안다는 것은 그 글을 읽고 글의 요지를 아는 것이다. 성인이 살아 계실 때에 온 천하 사람 중에 누군들 성인을 보지 못하였겠는가만, 보고 알아본 자가 이처럼 적었다. 500년 동안 누군들 그 글을 읽지 않았겠는가만, 들어서 아는 자가 또한 이처럼 적었으니, 사람이 성인을 배우는 일은 과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배우지 않으면 금수가 되기 때문에 공자ㆍ증자ㆍ자사ㆍ맹자가 글을 지어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니, 이는 당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 내려는 마음으로, 만세토록 금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구제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전을 읽는 자는 사람이라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사실과 거리가 먼 빈말이라고 여기지 말고, 반드시 나도 순 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스스로 기약해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야 들어서 아는 호걸지사(豪傑之士)가 되기에 부족하더라도 금수를 면하기에는 분명 충분할 것이다.
성현과 같은 형체와 본성을 동일하게 부여받았으면서도, 성인은 배우기 어렵다고 스스로 한정짓고 기꺼이 금수가 된다면 어떠하겠는가? 어찌 자신을 낳아 준 분을 생각하지 않는가? 기꺼이 금수가 되니, 금수를 낳은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맹자의 성선(性善)의 가르침은 사람마다 스스로 힘써서 그의 부모로 하여금 성현을 낳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배우는 자가 도리어 의심하고 심한 자는 헐뜯기까지 하니, 그 마음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설령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나의 본성이 요순과 같다고 여긴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를 통하여 요순과 나의 본성이 같다는 말을 믿고, 요순처럼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한다면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만약 사람의 본성이 걸주와 같다고 했다면, 장차 맹자가 명언을 했다고 기뻐할 수 있겠는가?
맹자가 또 순 임금의 무리와 도척의 무리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사람을 깨우쳐 줌이 절실하고 지극하지만 그 누구도 반성하고 유념하지 않는다. 그 마음이 ‘이(利)’에 가려서 기꺼이 도척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도척으로서 스스로 기약하였으니, 진정 금수일 뿐이다. 금수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
공자의 말씀은 간략하되 드러나고, 요약하되 극진하다. 맹자의 말씀은 길고 번거롭게 부연하였으니, 이것이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의 구분이다. 그러나 《논어》에서 공자와 문하 제자들의 문답은 차근차근 이끌어 점차 나아가게 하여, 알려고 노력하고 애태우기를 기다려 일깨워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자연 이와 같다. 맹자는 온 세상의 우매한 자들을 깨우쳐 주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 말이 부득불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하면서 속언이나 가까운 비유를 섞어서 말했으니, 그 이유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당장 깨우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내가 부득이해서다.”라는 것이다.
또 공손추(公孫丑)와 만장(萬章) 같은 문도는 모두 번지(樊遲)보다 못한 자들이었으니, 어찌 간략하고 요약한 말로 그들을 깨우칠 수 있었겠는가. 공자가 삼천 명의 제자들과 이야기한 내용에는 필시 《맹자》와 같은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뛰어난 제자 십철(十哲)이 다만, 정밀하고 간결한 내용만 취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논어》가 순정(純正)하지만, 전기(傳記) 여기저기에 나타난 내용은 《맹자》보다 더 자세한 부분도 있다. 〈진심(盡心)〉 편과 다른 편 가운데 문답이 아닌 혼자 말한 대목에 있어서는 역시 《논어》보다 더 간략한 내용도 있다.
《맹자》의 처음과 끝에 쓰인 내용과 《논어》의 처음과 끝에 쓰인 내용은 대체로 동일하다. 이 때문에 맨 마지막 장(章)의 앞을 향원장(鄕愿章)으로 끝맺었으니, 어찌 의도가 없겠는가. 《논어》 〈요왈(堯曰)〉편 앞에 부자지득방가장(夫子之得邦家章)을 쓴 것이 같은 예이다. 맹자는 오로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치는 것을 일삼았으니, 양주와 묵적으로 끝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향원의 해악이 양주와 묵적보다 심하였다. 양주와 묵적의 학설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그 그릇됨을 깨닫기가 쉬웠다. 그러나 향원의 행실에 대해서는 비판하려 해도 거론할 것이 없고, 꾸짖으려 해도 꾸짖을 것이 없어서 인심(人心)을 타락시키고 덕성(德性)을 상실하게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원인(愿人, 신중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니, 천하의 지성(至誠)이 아니면 누가 깨달아 살필 수 있겠는가?
천하의 근심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그런데 향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심한 자이다. 인심이 전부 없어지고 염치가 모조리 상실되어, 삼강(三綱)과 구법(九法)이 무너졌으며 해와 달은 빛을 잃고 천지가 꽉 막혔으니, 그 해로움이 홍수보다 심하다. 맹자가 이른바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라고 한 것과 “순종을 기쁨으로 삼는 것은 첩부(妾婦)의 도리이다.”라고 말하였으니, 모두 향원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끝내 과거 공부가 성행함에 이르러 성현의 경전이 단지 자구(字句)나 따지는 용도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마음으로는 공자와 맹자의 참된 가르침이 비록 진실하고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누가 기꺼이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선(善)으로 다스리겠는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여서 하늘을 속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까마득히 멀고 어두운 긴긴 밤이 어느 때에나 밝아질 수 있겠는가? 군자가 성인을 본받기를 바라는 학문이 또한 없어지게 되었으니, 아, 슬프도다. 없어지고 말 것인가.[진심 하 38장]
[역자 주]
1.삼묘(三苗)와 공공(共工) : 순 임금이 처벌했다는 사흉(四凶) 가운데 둘이다. 공공을 유주(幽州)에 유배하고, 삼묘는 삼위(三危)로 몰아냈다. 《書經 虞書 舜典》
2.도척(盜蹠)과 소정묘(少正卯) : 도척은 성격이 포악하여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전설적인 도적이다. 《莊子 盜蹠》 소정묘는 공자가 대사구(大司寇)로 있었을 때 노나라의 정사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주살한 인물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위백규(魏伯珪, 1727~1798),「맹자(孟子) 진심 (盡心)」(부분발췌), 존재집(存齋集) 제9권/ 독서차의(讀書箚義)○맹자(孟子) -
▲원글출처:한국고전번역원ⓒ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김건우 (역) ┃ 2013
'고전산문 > 존재 위백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설(人說 ): 사람의 도리에 관하여 (0) | 2017.12.21 |
---|---|
[맹자 고자상 10장 강해] 본심(本心)을 잃고 사는 삶 (0) | 2017.12.21 |
임진왜란의 의병(義兵) 김헌(金憲) (0) | 2017.12.21 |
성의(誠意)와 스스로 속임(自欺) (0) | 2017.12.21 |
뜻을 고상하게 가져라 (0) | 201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