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다
바람은 잔잔하고, 이슬은 맑고 깨끗하다. 가을은 정녕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은 흘러 움직이고 산은 고요하니, 북한산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친구들은 마음이 선량하고 소박하다. 모두 아름다운 선비들이다. 이런 아름다운 선비들과 함께 하여 이런 아름다운 경계에 노니는 것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자동(紫峒)을 지나니,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세검정(洗劍亭)에 오르니 또한 아름답다. 승가사(僧伽寺)의 문루(門樓)에 오르니, 역시 아름답다. 문수사(文殊寺)의 문에 올라가도, 대성문(大成門)에 도착해도 여전히 아름답다. 중흥사(重興寺) 동구(峒口)에 들어가니 아름답고, 용암봉(龍岩峰)에 올라서 보니 이 또한 아름답다. 백운대(白雲臺) 아래 기슭에 다가가도 아름답고, 상운사(祥雲寺) 동구가 아름답고, 폭포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대서문(大西門) 또한 아름답고, 서수구(西水口)가 아름답고, 칠유암(七游岩)이 매우 아름답고, 백운동문(白雲峒門)과 청하동문(靑霞峒門)이 역시 아름답다. 산영루(山暎樓)가 대단히 아름답고, 손가장(孫家莊)이 아름다웠다. 정릉동구(貞陵洞口)가 아름답고, 동성(東城) 바깥 모래펄에서 내달리는 말들을 보니, 이 또한 아름답다.
3일 만에 다시 도성에 들어와서 동네 어귀 장삿집 간판에 걸린 깃발, 마굿간, 흙먼지를 날리며 오가는 수레와 말들을 보게 되니, 더욱 아름다웠다. 아침도 아름답고 저녁도 아름다웠다. 날씨가 맑은 것도 아름답고, 날씨가 흐린 것도 아름다웠다. 산도 아름답고, 물도 아름답고, 단풍도 아름답고, 심지어 돌마저도 아름다웠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가까이 가서 보아도 아름다웠다. 불상도 아름답고, 스님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안주가 없어도 막걸리가 또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사람이 없어도 나뭇꾼이 흥얼대는 노래(樵歌) 조차도 아름다웠다.
요컨대 그윽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고, 환하게 밝아서 아름다운 곳도 있었다. 탁 트여서 아름다운 곳이 있고, 높고 아득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호젓하고 단순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고, 번다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고요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고, 적막하여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누구와 함께 하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이, 어찌 이처럼 많을 수 있단 말인가?
이자(李子, 이옥)는 말한다.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다.(佳故來 無是佳 無是來)”.
-이옥(李鈺 1760~1815), '중흥유기(重興遊記) 중에서 부분', 『김려(金鑢,1766∼1822)의 담정총서(藫庭叢書)』-
▲원문 및 번역 참조와 표절한 곳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고전명구/ '아름답기때문에 왔다'(한문희 번역 및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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