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讀老子): 물에 대하여
일찌기 듣건대, 공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다. "노자는 용이다. 훌륭하구나, 그모습이여! 용은 위로는 하늘에 있고, 아래로는 못에 있다. 그 자취는 신묘하고, 그 작용은 두루 거대하니, 항아리 속의 물고기가 아니로다."
내 경우에는 다만 그 물을 보았을 뿐 용을 보지 못했다. 크도다, 물이여! 물은 하지 않음도 없고 주장함도 없고, 부러워함도 없고 업신여김도 없지만, 천지의 장부(臟腑, 오장육부)요, 만물의 젖줄이다.
물은 한가롭고 여유롭게 흘러가지만, 요리사가 물을 취해, 매실을 넣으면 신맛이, 꿀을 넣으면 단맛이, 산초를 넣으면 매운 맛이, 소금을 넣으면 짠 맛이 나서 다섯 가지 맛의 장이 된다. 물은 아무 맛이 없지만, 결국 맛을 내는 것은 물이다. 염색공이 물을 취해 섞으면 치자에서는 누런 색이, 쪽에서는 푸른 색이, 명반에서는 검은 색이. 꼭두서니에서는 붉은 색이 만들어져서 다섯 가지의 빛깔이 된다. 물은 아무 색이 없지만, 결국 색을 내는 것은 물이다.
또 뱃사공이 물을 취해 나아가면, 노가 헤치고, 솔개가 날고, 바람이 질주하고, 닻을 내려 멈추게 하여 훌륭한 돛대가 된다. 물은 아무 힘이 없지만, 결국 힘이 되는 것은 물이다. 농부가 물을 취해 봇도랑(논에 물을 대거나 빼는 도랑)에 물을 비축하고, 기구로 물길을 내고, 대나무 홈통으로 물을 맞이하고, 두레박으로 물을 전해주면 백묘의 묘가 된다. 물은 아무런 베풂이 없지만, 결국 베푸는 것은 물이다.
어부는 물을 취해 옷을 비벼 빨고, 집짓는 이는 물을 취해 앞날과 뒷날을 번갈아 갈고, 진주를 캐는 자는 물을 취해 야광주를 움켜쥔다. 물은 아무 기술이 없지만, 결국 장인의 구실을 하는 것은 바로 물이다.
물은 세상의 오물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은 더렵혀지지 않고, 세상의 갈림길을 가지만 자신은 번민하지 않는다. 만물은 지나치게 얻어도 죽고 얻지 못해도 죽는다. 하루 동안 물이 없으면 다툼이 생기고, 이틀 동안 물이 없으면 병이 생기며
사흘 동안 물이 없으면 수명을 다하게 된다.
위대하도다, 물이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엉켜 있는 것이 내가 형용할 수가 없도다 아! 내가 도덕경을 보건대, 그것이 바로 물이었구나!
-이옥(李鈺,1760~1815), '물과도 같은 책, 도덕경', 『낭송 이옥』(채운 역/ 북드라망 2015) 중에서-
*참조:이 소품글(記)의 원제목은 '讀老子(노자를 읽고) ' 이다.<(完譯) 李鈺全集 (전5권, 이옥 지음/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기고 엮음/휴머니스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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