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부(蜘蛛賦): 거미의 충고
이 선생이 저녁 서늘한 틈을 타서 뜰에 나가 거닐다가, 한 마리 거미가 낮은 처마 앞에 거미줄을 날리고, 해바라기 가지에 망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거미는 거미줄을 가로로 치고 세로로 치고 수직으로 펴고 수평으로 펴는데, 그 너비는 한 자쯤 되고 그 형식은 컴퍼스에 맞았으며, 성글지 않고 조밀하여 실로 교묘하고도 기이하였다. 이 선생은 그것을 보고, 거미에게 기심(機心남의 것을 탐내는 욕심)이 있다고 여겨, 지팡이를 쳐들어서 그 거미줄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전부 걷어내어 없애고는 내려치려고 하는데, 거미줄 위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듯하였다. “나는 내 줄을 짜서 내 배를 채우려고 하오. 당신에게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내게 해독을 끼치는 게요?”
이 선생이 노하여 말하였다. “기계를 설치하여 생명을 해치는 것은 벌레들의 적이다! 나는 너를 제거하여 다른 벌레에게 덕을 베풀겠다.” 그러자 그 자는 다시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아! 어부가 그물을 설치하여 바다 물고기가 걸려드는 것을 두고, 어부가 포학한 짓을 한다고 하겠소? 우인(虞人수렵을 담당하는 동산지기)이 펼친 그물에 들짐승이 걸려 결국 부엌에 요리로 오르게 된다면, 우인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겠소? 사사(士師법무관)가 내건 법령에 악독한 자가 저촉되어 감옥이나 유배지에 갇히게 된다면, 그걸 두고 사사(士師)의 잘못이라고 하겠소?
만일 선생 말대로라면, 선생 같은 분들이 어찌하여 복희(伏羲)가 그물을 칠 때 간하여 말리지 않았고, 백익(伯益)이 산악을 불태울 때 막지 않았으며, 고요(皐陶)가 죄를 논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꾸짖지 않았단 말이오? 그것과 이것이 무어 다르단 말이오?
더구나 선생은 내 그물에 걸려든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아오? 나비는 방탕한 자라서 분단장을 해서 세상을 속이고 번화한 것을 좋아하여 쫓으며 흰 꽃 · 붉은 꽃만 편애하오. 그렇기에 내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오.
파리는 진실로 소인배라, 깨끗한 옥도 그놈 똥이 묻어 참소를 입었고, 술과 고기에 맛을 들여 목숨이 중한 걸 잊으며, 이익을 좋아하여 싫증을 내지 않소. 이 때문에 내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오.
매미는 자못 청렴 정직하여 문학하는 선비 같지만, 제 울음이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여 시끄럽게 울어대오. 그 때문에 내 그물에 걸려드는 게요.
벌은 실로 마음이 비뚤어진 좀이라, 제 몸에 꿀과 칼을 지니고는 망령되게도 아문에 간다고 하면서 부질없이 봄꽃을 탐내오. 이 때문에 내 그물에 걸려든다오.
모기는 가장 엉큼한 놈으로, 성질이 도철(饕餮, 중국 전설속의 흉악한 괴물, 식욕이 엄청나며 자기보다 강한자에겐 굽신거리고 약한자만 괴롭혔다) 같아서 낮에는 숨고 밤에는 나타나서 사람의 고혈을 빨고 다니오. 그 때문에 내 그물에 걸려들어요.
잠자리는 품행이 방정맞아 귀공자마냥 촐랑대어, 제자리에 눌러앉아 있지 않고 회오리바람 같이 홀연 이리 날고 저리 날죠. 그 때문에 내 그물에 걸려든다오.
그밖에 부나방은 재앙을 즐기고, 초벌레는 일을 좋아하며, 단조(丹鳥, 반딧불이)는 활활 타오르는 듯 과장하고, 천우(天牛하늘소)는 감히 하늘이란 이름을 몰래 훔쳤지요. 선명한 빛깔의 치마 같은 하루살이와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의 무리들은 허물을 스스로 만들어 흉액을 피할 수 없기에, 그물에 몸이 걸려 간과 뇌가 땅에 짓밟히게 된다오.
아! 주나라 성왕(成王) · 강왕(康王)의 화평 시절이 아니므로 형벌을 쓰지 않을 수도 없고, 사람은 신선이나 부처가 아니므로 공밥을 먹을 수도 없는 것. 저들이 그물에 걸린 것은 저들의 잘못이니, 내가 그물 친 것이 어찌 나의 잘못이란 말이오? 그렇거늘 선생은 저들에게는 사랑을 베풀면서 나에게만은 화를 내며, 나를 훼방하면서 도리어 저들을 보호한단 말이오?
오호라! 기린은 붙잡을 수 없고 봉황은 유인할 수 없듯이, 군자는 도리를 알기에,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있는 것이 재앙이 될 수 없소. 아무쪼록 이것을 잘 보시고 삼갈 것이며 힘쓸지어다! 스스로의 이름을 팔지 말고 스스로의 재주를 함부로 자랑하지 말며, 이익을 추구하다가 재앙을 부르지 말고 재물 때문에 죽지 마시오.
스스로 똑똑한 채 망령되이 굴지 말고, 남을 원망하거나 시기하지 마시오. 땅을 잘 가려서 디딜 만한 곳인지를 알아본 뒤 발을 내디디고, 때에 맞추어 갈 때 가고 올 때 오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훨씬 큰 거미가 있으니, 그 그물은 내가 쳐 놓은 경계 정도가 아니고 훨씬 크다오.”
이 선생이 그 말을 듣고,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세 번이나 자빠질 정도로 허겁지겁 내달려 문간에 이르러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는, 바닥을 굽어보면서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거미는 다시 나와서 종전처럼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이옥(李鈺 1760~1812), '지주부 蜘蛛賦',『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이옥 지음/심경호 옮김 / 태학사, 2001년)-
'고전산문 > 이옥(李鈺)'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를 읽고(讀老子): 물에 대하여 (0) | 2017.12.21 |
---|---|
칠야(七夜): 일곱 가지 밤 (0) | 2017.12.21 |
유광억전(柳光億傳 ): 마음을 팔아먹은 사람 (0) | 2017.12.21 |
문학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祭文神文) (0) | 2017.12.21 |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다 (0) | 201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