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는 것은 진실로 취한 사람의 일상사
나는 반유룡의 '시여취'(詩餘醉)를 얻어서 그것을 읽고 또 읽고는, 다시 모아 그것을 기록했다. 때로는 그 곡조를 흉내내기도 하고 운자(韻字)를 따라 거기에 화답하기도 했다.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시작해서 꽃이 질 때 쓰기를 마쳤는데, 내가 얻은 것은 이 또한 몇 편 있어 그것을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베끼고는 '묵토향'(墨吐香)이라 이름을 붙였다.
누군가 그 뜻을 물어 오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시여(詩餘)는 사(詞)이지 술이 아니다. 그런데 인장(麟長)은 그것을 취(醉)라 이름하였으니, 글이 사람의 내장을 적시고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흥겹게 하는 것이 마치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자가 그 누구인들 취하지 않겠는가?
나도 이 글을 읽고 진실로 취하고 말았다. 크게 취해서 취함이 극에 이른 자는 반드시 토하는 법이니, 가령 옛날에 이불에 토했다는 것과 수레의 깔개에 토했다는 고사(故事)가 그것이다.
그런데 나는 술에 있어서 취하면 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니, 나의 주벽이 그러한 것이다. 하니, 내가 시여취를 읽고 글을 지은 것 또한 내가 취하여 토한 것이다. 취하여 토하는 것은, 왕희지가 술에 취해 거위를 얻으려고 창고에 들어갔다 넘어지는 것과는 같지 않다.
위장은 술단지보다 좁으므로 술이 넘쳐 위쪽으로 올라와 용솟음쳐 목구멍에서 토하게 된다. 혹은 콧구멍으로 토하기도 하고 간혹 귀로 토하는 자도 있는데, 이 모두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내가 토하는 것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는 또한 애자(艾子)가 만취하여 심장과 간장을 토해내는 것에도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토하는 것은 진실로 취한 사람의 일상사인데, 위가 약하거나 결벽증이 있는 자는 남이 토하는 걸 보고는 그때문에 토하기도 한다. 남들이 내가 "묵토향"(墨吐香)에 실어 놓은 글들을 보고는 땅바닥에 손을 짚고 꿱꿱 구역질을 하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아! 어떤 기름장수 사내가 기꺼이 나를 위해 속적삼까지 벗어주겠는가?
-이옥(李𪸛, 1773~1820), '묵토향전서(墨吐香前敍)', 『담정유고(藫庭遺藁)』/花石子文鈔-
▲번역글 출처 및 참조: '낭송, 이옥'(이옥 저/채운 역/북드라망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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