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설(好問說): 의심나면 묻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보다 더 나은 앎이란 없지만,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치에 국한한다. 사물의 명칭이나 수치와 같은 것은 반드시 묻기를 기다린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은 묻기를 좋아했으며 공자는 예(禮)에 관해서 묻고 관직에 대해서 물었으니. 하물며 이보다 못한 사람에 있어서이랴!


내가 일찌기 《본초(本草)》를 읽은 후에 들판을 다니다가 부드럽고 살진 줄기와 잎을 가진 풀을 보고 그것을 캐고 싶어 시골 아낙네에게 물었다. 아낙네가, "이것은 '초오(草烏, 투구꽃)'라고 하는데 지독한 독이 있답니다"라고 하기에 깜짝 놀라 버리고 갔다. 본초를 읽기는 했지만 풀의 독에 거의 중독될 뻔하다가 물어서 겨우 면하게 된 것이니, 천하의 일을 자세히 따져 묻지 않고 망령되이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살펴보건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문(問)이란 의심나는 것을 묻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 묻기를 부끄러워하고 의성(疑城)에 갇혀 살다가 죽는 사람이 많다. 


오직 신원일(申原一)군만은 그 성품이 묻기를 좋아한다. 학술이 같고 다름과 의리의 취사는 말할 것도 없고, 비록 대수롭지 않은 자구(字句)로서 이미 대강 알고 잇는 것이라 해도 반드시 방법을 궁리하고 사리를 연구해서 환하게 명백해진 뒤에야 그만 두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진보할지 헤아릴 수가 없다. 


내가 호문설(好問說)을 지어 주노니, 그대는 이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풀리지 않는 것이 있거들랑 다시와서 나에게 물어라.


-이용휴(李用休, 1708∼1782), '호문설(好問說)'-


▲번역글 출처: 『나를 찾아가는 길-혜환 이용휴 산문선』(이용휴 지음, 박동욱,송혁기 옮기고 씀, 돌베게, 2014)


"사람 중에 전에 알지 못한 것을 알고서 성급하게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자가 있다. 대개 그가 아는 것은 알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는 것 외에 또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은 그침(끝)이 없다. 스스로 내가 아는 것이 이미 지극하다 여기는 자는 알지 못하는 자다. 《홍길주, '오로원기(吾老園記)'/  『조선의 기이한 문장(항해 홍길주 산문연구)』 (최식 지음 , 글항아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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