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아잠(還我箴): 참된 나로 돌아오다
옛날 내 어렸을 땐 하늘의 이치(天理)가 순수했다. 지각(知覺)이 생기면서 이를 해치는 것 일어나 식견이 오히려 해(害)가 되고 재능도 해가 되어 버렸다. 부지런히 마음을 닦고 세상일을 배우고 익혀도 얽키고 설켜 풀어낼 길이 없다.
이름깨나 난 다른 사람에게 굽신대며 떠받들길 아무 씨, 아무개 공하며 각별히 추켜세워 뭇 멍청이들 혼을 뺐었는데, 옛 나를 잃고 나자 참된 나도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겉사람 나를 타고 가버리곤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떠나가고픈 마음 생겨 오래도록 궁리하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눈 떠보니 해가 떠있고, 훌쩍 몸 돌리니 어느 새 집에 돌아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전과 같이 변한게 없지만, 몸 기운은 맑고도 평온하다. 나를 가둔 잠금 풀고 굴레 벗어내니 오늘 새로 태어난 듯 홀가분하다. 눈도 귀도 밝아진 것은 달리 없지만, 하늘이 준 총명함(天明天聡 천명천총)만은 옛날처럼 다시 돌아 왔다.
수많은 성인(聖人)들은 옛 사람이 남긴 그림자에 불과할뿐, 오직 나는 참 내게로 돌아가리. 어린 아이나 다 큰 어른이나 그 마음은 같은 것, 돌이켜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 없고 보면(還無新奇, 즉 익히 아는 것이라 자만하다보면) 딴 생각으로 빠져버리기 쉽다.
만약 다시 참된 나를 떠난다면 돌아올 기약 다시는 없으니, 향을 피우고 머리 숙여 천지신명께 비노니, 이 몸의 생애 마칠때까지 참된 나와 함께 하기를 두루 힘쓰리라고 맹세하노라.
-이용휴(李用休, 1708∼1782), '환아잠(還我箴)', 탄만집/집(集)/잠(箴)-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참조:還我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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