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한 반쪽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 미인(美人)을 보았다. 너무도 고운 여인이었으나 얼굴을 반쪽만 드러냈기때문에 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반쪽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병이 되었다.
누군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라고 일깨워 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답답증이 풀렸다.
무릇 산수(山水)를 구경한다는 것은 모두 이렇다. 그뿐 아니다. 산봉우리는 비로봉이 으뜸이고, 물길은 만폭동이 최고다. 이제 그 둘을 모두 구경했으므로 반쪽만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음악을 듣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구소곡(九韶曲)*을 들은 자라면, 그것으로 그치고 다른 음악은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제반풍록(題半楓錄)', 『혜환잡저(惠寰雜著)』-
※[역자 주]구소곡((九韶曲): 중국 상고 시절 순임금 때 지어진 음악으로, 최상의 음악이라고 치켜세워진다.
▲번역글 출처: 『문장의 품격-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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