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유

시와 문장(詩文)을 지을 때 남의 견해를 베끼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견해를 베끼는 것이야 저급하여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더라도 고집이나 편견이 섞이지 말아야 참된 견해(眞見)가 된다. 또 거기에다 반드시 진재(眞材, 타고난 재능, 개성)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일가를 이루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찾은 지 몇 년 만에 송목관(松穆館) 주인 이군 우상(虞上. 이언진의 字)을 얻었다. 군(君)은 문학의 도(道)에 있어서 식견(識見)이 높고 사유의 깊이가 심오하다. 먹 아끼길 금(金)처럼 하고 글 다듬길 단약(丹藥, 신선이 만든 영약)만들어 내듯 하여 붓이 한번 종이에서 떨어질라 치면 펼쳐낸 그대로 능히 세상에 전할 만 하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이는 능히 알아줄만한 이 없기 때문이요, 남에게 이기길 원하지 않았으니 족히 이겨볼만한 이 없기 때문이다. 이따금 시문을 가져와 내게 보여주고는 곧바로 깊숙이 넣어둘 뿐이다.


아아! 벼슬이 쌓여 일품에 이르더라도 아침에 거두어 가면 저녁에는 백수요. 돈을 모아 만금에 이르더라도 밤새 잃어버리면 아침에는 거지신세가 된다. 하지만 문인(文人)이나 재사(材士)의 소유(所有)는 그렇지 않다. 한번 가진 다음에는 비록 조물주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소유(眞有)라 할 것이다. 


군(君)은 이미 이를 가졌으니 이 나머지 구구한 것은 모두 사양하여 뒤돌아보지도 말고 가슴에도 담아두지 않는 것이 마땅한 듯하네.


-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송목관신여고서문(松穆館燼餘稿序文)',『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송목관집서(松穆館集序)」-


▲번역글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문( '불우한 제자를 위한 스승의 위로' 서정문 역)


**<옮긴이 주>

이 글은 송목관 이언진(李彥瑱 1740~1766)의 문집서문으로 그의 스승인 혜환 이용휴가 써준 글이다. 이언진은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계급)으로 통역을 맡아보던 역관 출신이다. 일본통신사절을 수행하면서 뛰어난 시문으로 단번에 세상에 이름을 얻었지만, 중인이라는 신분계급의 한계, 그리고 가난과 질병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우한 환경속에서 결국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위의 글은 제자의 불우한 처지와 안타까운 환경 그리고 그의 뛰어난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명문대가인 늙은 스승이 불우한 중인출신의 제자에게 주는 위로의 글이다. 글을 통해 노스승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오경이 되면서 종이 울리니

길거리가 뛰어달리 듯 분주해지네.

가난한 자는 먹이를 천한 자는 벼슬을 구할 테니

만인의 속마음을 앉아서도 알겠네.(1수)


종이를 반장 찢어 창구멍을 바르고,

종이 반장 찢어 침을 닦네.

지금 보이는 몸은 본디 환영이니

그려낸 모습 또한 참이 아니어라.(117수)


오관에다 글을 보는 눈까지 갖추고

온갖 병 가운데 돈 버는 버릇만 없네.

시 읊고 베끼며 그림까지 그리니

사람이 지닐 것은 모두 넉넉하다네.(119수)


서방에는 문자의 바다가 있고

하늘 위에는 책의 곳간이 있다네.

글을 알지 못하면 옥황상제도 없고

글을 알지 못하면 부처도 없다네.(121수)


어느 곳에서 문묵장을 찾아

사람 얼굴 위에 죄과를 기록할까

거짓 문장과 위학으로서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훔친 본보기라고.(134수)


바보도 죽으면 썩고 총명한 이도 썩으니

흙덩어리로 누구누구를 어이 분간하랴.

하찮은 책 몇 권이

내 죽은 천년 뒤에 나를 증명하리.(145수)

 

-이언진 한시(漢詩), '衕衚居室(동호거실)' 중에서(번역글출처: 한국문화콘텐츠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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