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나는 평등하며 만물은 일체이다
나와 남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친하고 남은 소원(疏遠,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하다. 나와 사물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도리어 친한 것이 소원한 것의 명령을 듣고, 귀한 것이 천한 것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욕망이 그 밝은 것을 가리고, 습관이 참됨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에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냄과 행하고 멈추며 굽어보고 우러러봄이 모두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말하고 웃는 것이나 얼굴 표정까지도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치며, 정신(精神)과 의사(意思, 사유 또는 사고 즉 무엇을 헤아리고 판단하고 궁리함)와 땀구멍과 뼈마디 하나도 나에게 속한 것이 없게 되니,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벗 이처사(李處士)는 예스러운 모습과 예스러운 마음을 가졌으며, 남과 담을 쌓는 마음(畦畛휴진)을 베풀지 않고, 겉치레를 꾸미지도 않는다(不修邊幅 불수변폭). 하지만 마음에는 지키는 것이 있어서 평생 남에게 구해본 적도 없고 좋아하는 사물도 없었다. 오직 부자(父子)가 서로를 지기(知己)로 삼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부지런히 일하여 스스로 힘써서 먹고 살 따름이었다.
처사는 손수 심은 나무가 수백에서 천 그루에 이르는데, 그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은 한 치 한 자를 모두 아침저녁으로 물 주고 북돋아서 기른 것이다. 나무가 다 자라서 봄이면 꽃을 얻고 여름이면 그늘을 얻으며 가을이면 열매를 얻게 되니, 처사의 즐거움을 알 만하다.
처사(處士)가 또 동산에서 목재를 가져다 작은 암자 한 채를 짓고 편액을 달기를 아암(我菴: 나의 집)이라고 했으니, 사람이 날마다 하는 행위가 모두 나에게 연유한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저 일체의 영화(榮華)ㆍ세리(勢利)ㆍ부귀(富貴)ㆍ공명(功名)은 나의 천륜(天倫)을 단란하게 즐김과 본업(本業)에 갖은 힘을 다 쓰는 것과 견주어 외적인 것으로 여겼다. 단지 외적인 것으로 여길 뿐만이 아니었으니, 처사는 선택할 바를 안 것이다.
훗날 내가 처사(處士)를 찾아가 함께 암자 앞 늙은 나무 밑에 앉게 되면 마땅히 다시 “남과 나는 평등하며 만물은 일체이다(當更講人我平等, 萬物一體之旨矣)”라는 뜻을 이야기 나눌 것이다.(박동주 역)
**역자 주
1. 휴진(畦畛) : 남과 자기와의 경계를 말한다.
2. 불수변폭(不修邊幅 ) : 불찬변폭(不襸邊幅)이라고도 한다. 겉치레란 의미이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公孫不吐哺走迎國士, 與圖成敗, 反修飾邊幅, 如偶人形. 此子何足久稽天下士乎?”라 했다. 이현(李賢)의 주(注)에 “言若布帛襸整其邊幅也”라고 했다. 후에 복식(服飾), 의표(儀表)를 강구하지 않는 것을 형용해서 불수변폭(不修邊幅)이라 한다.
- 이용휴(李用休,1708~1782), '아암기(我菴記)', 혜환잡저-
▲번역글 출처: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박동욱 역주/소명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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