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에 물어보라
풀은 바람이 동쪽으로 불면 동쪽으로 향하고 바람이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향한다. 다들 바람 부는 대로 쏠리는데 굳이 따르기를 피하려 할 이유가 있겠는가? 내가 걸으면 그림자가 내 몸을 따르고 내가 외치면 메아리가 내 소리를 따른다. 그림자와 메아리는 내가 있기에 생겨난 것이니 따르기를 피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따르지 않은 채 혼자 가만히 앉아서 한평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어째서 상고 시대의 의관(衣冠,남자의 웃옷과 갓이라는 뜻으로, 남자가 옷을 정식으로 갖추어 입음)을 따르지 않고 오늘날의 복식(服飾,옷과 장신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따르며, 중국의 언어를 따르지 않고 각기 자기 나라의 발음을 따르는 것일까? 이는 수많은 별들이 각자의 경로대로 움직이며 하늘의 법칙을 따르고, 온갖 냇물이 각자의 모양대로 흐르며 땅의 법칙을 따르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물론 일반적인 추세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천성과 사명을 견지(堅持,어떤 견해나 입장 따위를 굳게 지니거나 지킴)하는 경우도 있다. 천하가 모두 주나라를 새로운 천자의 나라로 섬기게 되었음에도 백이와 숙제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모든 풀과 나무가 가을이면 시들어 떨어짐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여전히 푸른 것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렇지만 우임금도 방문하는 나라의 풍속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신의 복식을 바꾸셨고, 공자도 사냥한 짐승을 서로 비교하는 노나라 관례를 따르시지 않았던가! 성인(聖人)도 모두가 함께 하는 부분을 위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이치를 따라야 한다(當從理). 이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있다.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자기 마음에 물어보라(凡事必問之心).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면 이치가 허락한 것이요(心安則理所許也, 爲之),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이치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不安則所不許也, 已之).
이렇게만 한다면 무엇을 따르든 모두 올바르고 하늘의 법칙에 절로 부합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만 따르다 보면 운명과 귀신도 모두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수려기(隨廬記)'-
▲번역글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육체의 눈으로는 사물을 보고(外眼以觀物), 마음의 눈으로는 이치를 본다 (內眼以觀理). 사물 치고 이치 없는 것은 없다(而無物無理)" -이용휴(李用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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