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두려워하고 버려야 할 것
덕(德)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니, 덕이 없다 하여 버려서는 안 될 것이요, 단지 소박하고 근후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다. 재주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니, 재주가 없다 하여 버려서는 안 될 것이요, 단지 부지런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여기에 있다 하자. 그의 글로 말하면 ‘어(魚)’와 ‘노(魯)’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않아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글을 남의 손을 빌리지는 않고, 그의 지혜로 말하면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않아서 모든 하는 일이 남의 비웃음을 사지는 않으며,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그런대로 어버이를 섬기고 처자식을 부양하며, 남을 대해서는 겨우나마 응대하는 데 잘못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사람이 이른바 ‘보통 사람〔常人〕’이며, 공자가 말한 ‘중등 이하의 자질을 가진 사람〔中人以下〕*’이고, 맹자가 말한 ‘향인(鄕人)을 면치 못하는 사람〔未免鄕人〕*’이다. 어떤 집의 자제가 이와 같다면 또한 다행이라 할 것이니, 덕이 있고 재주 있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학문하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의당 성현에 뜻을 두어야 하고 스스로 보통 사람을 기약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세의 쇠미(衰微,원래의 형세가 기울어 바른 기운이 힘을 얻지 못하고 보잘것 없이 약해짐)한 풍속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보통 사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덕이 없고 재주가 없는 것이 모두 보통 사람이 되기에 문제 되지 않으며, 오직 무행(無行)한 자만이 천하에 버려야 할 자이다.
‘무행(無行)’이란 성현의 행실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도, 추악한 행실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ㆍ형제ㆍ고모ㆍ형수ㆍ자매 사이에서 상례(常禮, 기본적으로 지켜져야할 상식적인 예의범절)를 행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봉두난발을 하고 맨발에 맨몸을 드러내며 기대어 서고 쪼그리고 앉고 드러눕고 엎드려 있기까지 하며, 밖에 나가서는 친척ㆍ향당(鄕黨)ㆍ장로ㆍ친구 사이에서 상도(常道, 상식적인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못하고, 심지어는 황당무계하고 비루하며 친압(親狎 버릇없이 함부로 굴며 지나치다할 정도로 친한 척하는 것)하고 깔보며 싸우고 패려궂기까지 하다.
말하는 것은 사리에 벗어나거나 사납고 거만하고 저속하고 농지거리 투성이며, 속에 든 마음은 허황하고 불안하며 변덕스럽고 거짓되다. 그리하여 삼가고 절제하는 모든 범절에 방자하고 전도된 행동을 하면서 조금도 돌아보거나 거리낌이 없는 것을 ‘무행(無行)’이라고 이른다.
이와 같은 것들은 바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 자신도 안다. 그러므로 또 유심히 관찰하고 몰래 엿들어서 자신을 숨기고 남을 속이며,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여 유포함으로써 늘 잘못이 없는 위치에 스스로 서고자 하는데, 이는 무행 중에서도 심한 자이다. 그러므로 덕이 없고 재주가 없는 것이 모두 반드시 그 집에 해롭고 그 자신에게 흉한 것은 아니며,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무행(無行)’이다.
무행한 자는 무례(無禮)하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나라를 무너뜨리고 집안을 말아먹으며 자신을 망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예를 버린다.〔壞國喪家亡人 必先去其禮〕”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예가 없는 사람은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人而無禮 胡不遄死〕”라고 하였으니, 예가 없는 화가 이와 같으며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도 또 이와 같다.
덕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가르쳐서 덕에 들어가게 할 수 있고, 재주가 없는 사람은 그래도 채근하여 재주에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행하고 무례한 자의 경우는 가르쳐도 안 되고, 채근하면 더욱 심해져서 끝내 보통 사람에 끼이지 못한다.
따라서 단지 천하에 가장 버려야 할 자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멸망하여 요행이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천지간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사람이 살아 있는 것도 또한 괴이할 것은 없다.
※[역자 주]
1. 중등이하의 사람(中人以下): 《논어》 〈옹야(雍也)〉에 “중등 이상의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차원적인 것을 말해 줄 수 있으나, 중등 이하의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차원적인 것을 말해 줄 수 없다.〔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2. 향인(鄕人)을 면치 못하는 사람(未免鄕人):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순 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 임금은 천하에 모범이 되어서 후세에 전할 만하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근심할 만한 일이다.〔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윤기(尹愭 1741~1826), '천하에 버려야 할 무행(無行)한 자[無行無禮者爲天下棄物]',『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3책/ 협리한화 65조목〔峽裏閒話 六十五〕』-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상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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