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한 사람도 버티고 살아가는데

빈천할 때는 반드시 나보다 심한 사람을 생각하여 그보다는 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나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하여 그보다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분수에 넘친 생각을 하게 되고, 분수에 넘친 생각을 하면 반드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대광주리에다 거친 밥 먹고 표주박으로 맹물을 떠 마시며 쌀알이 없는 멀건 나물국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면 사람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보다 심한 경우는 아궁이에 연기가 나지 않고 이틀에 한 번꼴로 밥을 먹기도 하며, 더 심한 경우는 굶주림에 지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눈동자에 정기가 없이 헤매다가 밥을 세 번 삼킨 뒤에야 사물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굶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나보다 더 빈궁한 사람이 있다 하리라.

옷이라고는 구멍 숭숭한 삼베옷과 헌 솜옷뿐이며, 겨울에 추운 베옷을 입고 여름에 더운 가죽옷을 입는 생활은 곤궁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이보다 심한 경우는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걸쳐 팔꿈치가 다 드러나고 신발 뒤축이 다 터지기도 하며, 더 심한 경우는 나뭇가지를 모으고 나뭇잎을 덮어서 이불로 삼고 소덕석*을 쓰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얼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나보다 더 빈궁한 사람이 있다 하리라.

사립짝으로 대문을 만들고, 벽에 홀(笏) 모양의 구멍을 내어 출입문으로 삼고, 항아리 아가리로 창틀을 만들고, 새끼줄로 지도리를 삼은 집이 지극히 누추하기는 하다. 그러나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는 집은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 비가 새고 마당 가득 쑥대가 자라기도 하며, 더 심한 경우는 언덕에서 임시로 머물거나 눈밭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그렇다면 달팽이집 같은 움막에 산다 해도 반드시 나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 하리라.

비쩍 마르고 절름거리는 조랑말이 채찍으로 백 번을 쳐야 한 걸음을 나아간다면 길을 가기가 지극히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는 사람은 물집 잡힌 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더 심한 경우는 무거운 짐을 지고 급하게 가느라 쉬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길 가기가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반드시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 하리라.

이를 미루어 보면 백만 가지, 천만 가지의 일이 다 그러하다. 나보다 더한 사람도 버티는데 나만 버티지 못할쏘냐? 모든 일에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한다면 “어쩔 수 없음을 알아서 편안히 받아들이는*” 성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 설사 불행히 죽게 될지라도 이 또한 운명이니 쓸데없이 근심할 것이 무어 있겠는가.

※[역자 주]
1.소덕석: ‘소덕석’은 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주는 멍석을 이른다. 벼슬이 경조윤(京兆尹)에까지 올랐으나 직언을 서슴지 않아 대역죄로 옥중에서 죽은 한(漢)나라 왕장(王章)이 출사하기 전에 집에서 궁핍하게 지내는 모습을 서술한 《한서(漢書)》 권76 〈왕장열전(王章列傳)〉의 고사를 인용한 말이다. 
2.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고 :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가을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가니〔茅屋爲秋風所破歌〕〉에 이러한 정경이 묘사되어 있다.
3. 어쩔 수 없음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修)의 〈병서부(病暑賦)〉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편안히 받아들임이여, 성현의 고상한 자취로다.〔知其無可奈何而安之兮 乃聖賢之高躅〕”라는 말에서 따왔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9 古今文集 雜著》

-윤기(尹愭 1741~1826),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벽에 써 붙인 글(書壁自警)'중에서,『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3책』-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강민정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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