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면

세상에 공정한 언론이 없어서 비난과 명성, 거짓과 진실이 모두 뒤집히고 어그러졌다. 이른바 시시비비(是是非非. 여러 가지의 잘잘못.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란 것이 자신의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을 따른 것이 아니라면 바로 권세의 유무를 따를 뿐이다.


여기 어떤 일이 있다고 치자. 그 옳고 그름이란 흑백(黑白)처럼 분변하기 쉬울 뿐만이 아닌데도, 시비를 판정하는 자들은 매양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은 옳다고 한다. 마음속으로는 진실을 알면서도 명백히 판별하려 하지 않는 자도 있고, 내 편 네 편에 따라 후박(厚薄 너그럽거나 까다롭고 쌀쌀함)을 달리하여 고의적으로 돕거나 돕지 않는 자도 있으며, 마음속에 주관이 없이 남의 말만 믿는 자도 있고, 선입견을 고수하여 자세히 조사하지 않는 자도 있다. 


번갈아 전하고 서로 호응하여 오류를 답습하고 잘못을 더하니, 이는 모두 실제로 형적(形迹)을 조사하여 의리(義理, 올바른 도리와 이치)로 결단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호오(好惡 좋아하고 싫어함)와 친소(親疎 가까이하고 멀리함)에 따라 말을 왜곡하는 데 지나지 않아서 그 근본은 버리고 지엽(枝葉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다스리며, 밝고 공정한 것은 애매하게 만들고 무(誣, 꾸미거나 과장하여 속임)함과 거짓은 덮어 주어 옳은 것은 끝내 그른 데로 떨어지고 그른 것은 마침내 옳은 데로 돌아가니, 비록 참된 시비를 밝히고자 한들 내 편은 적고 남의 말은 많다는 탄식만 생긴다.


인사(人事)의 아름답고 추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물의 참과 거짓, 문장의 좋고 나쁨까지도 모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어서 연석(燕石)이 야광주(夜光珠)보다 보배가 되고, 학구(學究, 독서를 허투와 허세로 하는 사람, 즉 독서는 열심히 하여 머리에 든 얕은 지식은 많고  남의 것, 남의 말은 잘하지만 정작 자기 생각을 담은 분명한 글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사람, 세상물정 어두운 사람을 가르킴)가 홍조(鴻藻)보다 높아지니, 서역(西域)의 장사꾼과 상관완아(上官婉兒)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월족(刖足)의 억울함과 창부(傖父)의 호칭을 면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천운(天運)이 상도(常道)를 잃어서 음양의 참서(慘舒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물의 기운이 성하거나 쇠함이 교차로 변화하는 것)가 변하고, 지도(地道 세상의 도리)가 바름을 어겨 경위(涇渭, 사리의 옳고 그름과 시비의 분간을 이르는 말)의 청탁(淸濁 맑음과 탁함, 선과 악의 상태)이 뒤바뀌어 그 때문에 인사(人事, 사람의 일)도 그에 따라 본색을 잃어버린 것인가.


※[역자 주]

1. 연석(燕石), 학구(學究): 가짜가 높이 평가받고, 고루한 사람이 대문장가로 행세한다는 말이다. 연석은 연산(燕山)에서 나오는 옥과 비슷한 하찮은 돌인데, 옛날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야광주(夜光珠)라고 여겨 비단으로 몇십 겹을 싸서 잘 보관하였다가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던 고사가 있다. 학구(學究)는 독서하는 사람의 범칭인데, 우활하고 고루한 독서인을 가리키는 겸사로 자주 쓰인다. 홍조(鴻藻)는 ‘홍필여조(鴻筆麗藻)’의 준말로, 시문이나 필력이 웅건하고 화려함을 가리킨다.

2. 월족(刖足)의 억울함과 창부(傖父)의 호칭을 면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재능을 숨겼다가 감식안을 지닌 자를 만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원문의 ‘서역고호(西域賈胡)’는 서역의 장사꾼이란 뜻으로, 서역의 장사꾼은 아름다운 구슬을 얻으면 자기 배를 가르고 숨겨 둔다고 한다. 《資治通鑑 唐紀》 상관완아(上官婉兒)는 당나라 상관소용(上官昭容)을 가리킨다. 어려서 궁중에 들어가 무측천(武則天)의 조서를 관장하였고, 중종(中宗) 때 소용(昭容)에 올라 권세를 잡았다. 군신들이 잔치에서 시를 지으면 모두 상관소용이 등급을 매겨 포상을 하였는데, 당시의 부화한 문풍 속에서도 좋은 작품들을 잘 골라냈다고 한다. 《唐書 卷76 上官昭容列傳》 월족(刖足)의 억울함이란 춘추 시대 초나라의 변화(卞和)가 박옥(璞玉)을 얻어 임금께 진상하려다 발뒤꿈치가 잘린 고사를 가리키고, 창부(傖父)의 호칭이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지 못해 평생 시원찮은 늙은이로 평가받게 된다는 말이다.

3. 음양의 참서(慘舒) : 사물의 이치가 양에서 펴지고(陽舒), 음에서 수축하는 것(陰慘)을 가리킨다. 계절로 보면 양서(陽舒)는 봄과 여름, 음참(陰慘)은 가을과 겨울을 상징한다. 후한(後漢)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사람이 양의 때에 있으면 서창하고, 음의 때에 있으면 참담하다.〔夫人在陽時則舒 在陰時則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4. 경위(涇渭)의 청탁(淸濁) : 뒤섞일 수 없는 사물의 진위(眞僞)나 사리(事理)의 시비(是非)를 비유하는 말이다. 경수(涇水)는 탁하고 위수(渭水)는 맑은 물인데, 이 두 강물이 장안(長安)의 앞에서 합류해도 본래의 청탁이 뒤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윤기(尹愭 1741~1826), '세상에 공론이 없다〔世無公言〕',『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2책 / 井上閒話(정상한화) 51조목 중에서』-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채식 (역)┃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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