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적(民賊): 진짜 큰 도적은 백성의 도적

당(唐)나라의 이섭(李涉)은 구강(九江)을 지나다가 도적을 만나자 시를 지어주기를, "지금 세상 태반은 그대 같은 자라오(世上如今半是君)" 라고 하였다. 이는 세상 사람 중에 도적이 아니면서 도적인 자가 많음을 이른 것이다.


북위(北魏)의 이부 상서(吏部尙書) 원수의(元修義)가 관직의 대소에 따라 가격을 정해놓았는데, 고거(高居)가 상당군(上黨郡)의 태수 자리를 원했으나 얻지 못하자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도적이야!”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묻기를,“백주 공당(公堂)에 무슨 도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라고 하자, 고거는 원수의를 가리키며, “뇌물을 많이 준 자가 관직을 얻으니, 경사(京師)에서 대놓고 약탈하는 것이 큰 도적이 아닙니까.” 라고 하였다. 이는 뇌물을 받는 관원이 도적임을 이른 것이다.


송(宋)나라의 정광(鄭廣)이 해적 신분으로 투항하자 나라에서는 그에게 관직을 주었는데, 매번 관부에 나갈 때마다 동료 관원들이 그와 함께 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자 속상하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하루는 새벽에 관아에 출근하니 동료들이 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광은, “거친 제가 졸시(拙詩)를 한 수 지었기에 공들께 아룁니다.” 라고 하고서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정광이 시 지어 관원들께 올리오니 / 鄭廣有詩上衆官

문관이든 무관이든 똑같이 보인다오 / 文武看來摠一般

관원들은 벼슬아치로 도적질하고 / 衆官做官却做賊

정광은 도적으로 벼슬살이한다오 / 鄭廣做賊却做官


이는 관원이 도적질하는 것이 도적이 관원 노릇 하는 것만 못함을 이른 것이다. 관리가 되는 것은 비록 도적이 되는 것과는 다르지만, 나라의 좀이 되고 백성의 좀이 되는 면에서는 그 죄가 도적보다 크다. 이것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도적질하는 신하(盜臣)’이며, 《맹자》에서 말한 ‘백성의 적(民賊)’이다.


무릇 관직을 제수하고 과거 급제를 시키면서 사심에 따르며, 소송을 심리하고 죄를 판결하면서 법을 따르지 않으며, 남의 땅을 빼앗고 남의 이익을 가로채면서 위세로 누르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죽어서 구렁에 나뒹굴게 하면서도 이를 이롭게 여기는 자는, 천리(天理)로 헤아리면 큰 도적이고, 왕법(王法)으로 논하면 중형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를 도적으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총애하고 높이며, 오직 담장을 뚫거나 타고 넘어가서 재물을 훔치는 사람만 도적이라고 이르니, 이것이 이섭ㆍ고거ㆍ정광 등이 격분한 이유이다.


옛날에 내 친구가 대화를 나누다 도적이란 말이 나오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지금 세상의 도적을 논한다면, 안에서는 가마를 타고 구종별배(驅從別陪,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를 수행하며 행차에 앞장서 호위하는 수행원)를 내닫게 하며, 밖에서는 절월(節鉞, 임금이 권력과 권위를 보증해주는 증표, 절부월)을 세우고 산개(傘蓋 화려하게 꾸민 해가리개용 덮개)를 펼친 자가 바로 진짜 큰 도적이네. 


쥐처럼 몰래 훔치는 저 좀도둑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거나 탐관오리의 학정(虐政)에 시달리다 못해 본업을 잃고 항심(恒心)이 없어져서 구차하게 연명하고 있는 것뿐이니, 그 본래의 정상(情狀)을 살펴보면 또한 가련하네. 그런데 지금은 큰 도적이 좀도둑을 다스리고 있으니, 또한 우습지 않은가.”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계강자(季康子)가 도적을 걱정하자, 공자께서는 ‘당신이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백성들에게 상을 주면서 도적질을 하라고 해도 도적질하지 않을 것(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이라고 말씀하였네. 만일 성인께서 정사(政事)를 다스리신다면 크든 작든 도적을 근심하지는 않으실 것이니, 참으로 깊이 탄식할 노릇이 아닌가.”


※[역자 주]

1. 도적질하는 신하(盜臣) : 《대학장구》 제10장에 “백승(百乘)의 집안은 수탈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수탈하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둔다.〔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라는 내용이 보인다.

2. 백성의 적(民賊):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지금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내 능히 군주를 위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창고를 채울 수 있다.’라고 하니, 지금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요,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이라는 것이다.〔今之事君者曰 我能爲君 辟土地 充府庫 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3. 절월(節鉞) : 부절(符節)과 부월(斧鉞)이란 뜻으로, 관찰사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대장(大將)ㆍ통제사들이 지방에 부임할 때 임금이 내주던 물건이다. 명을 어긴 자에 대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상징한다.


-윤기(尹愭 1741~1826), '큰 도적(大賊)',『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3책/ 협리한화 65조목〔峽裏閒話 六十五〕』-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상아 (역) ┃ 2013


※[옮긴이 주] 백성의 적(民賊)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나오는 말이다. 단편적인 내용보다 그 전체 내용을 보면 '백성의 적'(民賊)이 어떠한 자를 가르키는 것인지 그 뜻과 의미가 보다 분명해 진다. 전체 내용은 이렇다. “지금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내 능히 군주를 위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창고를 채울 수 있다.’고 하니, 지금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요,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다. 군주가  올바른 도(道)로 향하지 않고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군주를 부유하게 해주려고 하니, 이는 폭군인 걸왕(桀王)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군주를 섬기는 자가 말하기를 ‘내가 군주를 위하여 우방국과 맹약을 맺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니, 지금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요,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다. 군주가 도(仁)를 향하지 않고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군주를 위하여 억지로 전쟁을 하려고 하니, 이는 포악한 걸왕을 도와주는 격이다. 지금의 군주를 섬기는 도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을 바꾸지 않는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아침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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