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하여

맹자가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대하다.〔恥之於人大矣〕”라고 하였다. 부끄러움은 사단 중에 하나요 사유(四維)의 마지막 덕목인데, 유독 이것을 들어 중대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부끄러움〔恥〕은 성(性, 본성)에서 발로한 것이니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잘 쓰면 군자가 되고 잘못 쓰면 소인이 됩니다. 부끄러움은 하나입니다.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리(千里)로 어긋나게 되니, 부끄러움을 어떻게 쓰는가에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몸이 있으면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으면 부끄러움이 있는 법입니다. 선을 듣고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면 이것이 부끄러움이고, 허물을 듣고서 수치스런 마음이 들면 이것이 부끄러움이니, 행하여 마음에 떳떳치 못한 점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부끄러움〔恥〕’이라는 글자가 ‘이(耳, )’와 ‘심(心, 마음)’의 조합으로 되어 있으니, 귀로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선은 가까이하지 못하고, 허물은 멀리하지 못하고, 배움은 성인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한 가지 사물이라도 이치를 궁구(窮究, 깊이 파고들어 연구함)하지 못하면 저자거리에서 매질을 당하는 것처럼 부끄러워하고, 한 가지 일이라도 미진하면 제 몸이 훼손된 것마냥 부끄러워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발분(發奮,가라앉았던 마음과 힘을 돋우어 일으킴)하여 부끄러움을 멀리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군자입니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한가롭게 거처할 적에 선하지 못한 것을 혹 가리지 못했던가? 군자를 만났을 때에 선함을 혹 드러내지 못했던가? 다른 사람이 가진 기예를 내가 시샘할 수 없을까? 다른 사람의 훌륭함을 내가 어깃장을 놓을 수 없을까? 임기응변이 공교롭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며 부귀를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라고 생각하여, 아침저녁으로 노심초사 부끄러움을 가릴 방법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소인입니다.


비유하여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활을 쏘는 이가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적중시키지 못한 것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에게 반성하고 어떤 이는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니, 이는 부끄러움을 쓰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소인도 똑같이 본성을 타고났으니, 불선(不善)이 부끄러운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불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무한히 좋지 못한 생각으로 뒤바뀌어 나오고, 한없이 좋지 못한 광경을 연출해내는 것일 뿐이니,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인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도리어 무지하여 부끄러움도 없는 일개 용렬하고 어리석은 자가 그나마 폐단이 없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아! 군자에게는 허물을 고치고 선을 따르는 기틀이 되는 것이 도리어 소인에게는 마음을 속이고 남을 해치는 단서가 되고, 하지 못할 짓이 있는 마음이 도리어 하지 못할 짓이 없는 바탕이 될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군자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날마다 덕을 새롭게 하여 마침내 하늘과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없앤 자입니다.


소인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속이고 기교를 부려 불선을 감추고 선을 자랑하고서 바야흐로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지만, 필경에 얻는 것은 속내를 다 내보인 듯한 씻어내기 어려운 치욕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만든 자입니다. 이 둘의 득실과 영욕이 과연 어떠합니까?


또 논해 보건대, 어찌 아래에 있는 백성만이 그렇겠습니까? 임금이 더욱 심합니다. 우 임금이 수레에서 내려 죄인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은 자신의 정치가 요ㆍ순 임금에게 미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서이고, 탕 임금이 아형(阿衡, 은나라의 재상, 공신인 현자 이윤伊尹을 가리킴)에게 위임한 것은 한 지아비가 살 곳을 얻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서입니다. 오직 부끄러움을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후세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 성왕이 치세의 지극한 공업을 이룰 수 있었던 힘입니다.


그러나 삼대 이후로는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이와 달라졌습니다. 한 문제(漢文帝)는 가생(賈生, 한 문제시대에 연소한 나이에 왕의 측근인 태중대부에 오른 청렴강직한 인물로 법과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려다가 제후들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무산되고 오히려 말단 외지로 좌천된 가의誼를 말한다)에 대해 스스로 자신보다 낫다고 말하면서도 그에게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고, 한 무제는 급암(汲)에 대해 그의 직언을 오래도록 듣지 못하자 자신이 거침없이 망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가생과 급암이 장사(長沙)와 회양(淮陽)으로 쫓겨난 이유가 꼭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의로운 군주의 부끄러운 덕이 되기에는 충분하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심한 경우로는 ‘빈 들보에 제비집 진흙 떨어지네〔空梁落燕泥〕’라는 시구와 ‘뜨락의 풀은 사람 없어 맘껏 푸르네〔庭草無人隨意綠〕’라는 시구를 가지고, 설도형(薛道衡)과 왕주(王)의 목숨을 억울하게 보내기까지 하였으며, 왕승건(王僧虔)과 포조(鮑照)의 비굴한 필법과 비루한 문장은 정상이 딱합니다.


모두 똑같은 ‘치(恥)’ 자인데, 어이하여 전후와 피차가 이토록 상반된단 말입니까? 나의 고유한 마음으로, 선하게 쓰면 이렇게 되고 불선하게 쓰면 저렇게 될 뿐이니, 하늘이 재주를 내려준 것이 현격히 달라서가 아니라 제 마음을 함몰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있다면 부끄러움을 쓰는 방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 주장을 적어 당세의 집정 군자(執政君子, 권세를 잡은 자로써 군주를 현명한 성군으로 이끌어 백성들에게 그 혜택이 고루 베풀어지게 할 수 있는 자)에게 올리고 싶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양 분수에 넘는 짓이라 부끄럽게 여겼는데, 지금 책문을 올리라는 영광스런 명을 받자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윤기(尹愭 1741~1826), '부끄러움(恥)',『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8책/ 책(冊)』-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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