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규여측(管窺蠡測 ):대나무 통으로 하늘을 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헤아린다
공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부터 이치를 앎)의 성인이면서 오히려 노자(老子)에게 예를 물었고, 담자(郯子)에게 관직에 대해 물었으며, 사양(師襄)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안자(晏子, 제나라의 재상인 안영)는 아성(亞聖)이라 학식이 많으면서도 오히려 학식이 적은 이에게 물었고, 능하면서도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었으니, 배우기를 좋아하여 일정한 스승이 없음이 이와 같았다.
지금 사람들은 서사(書史)를 약간 섭렵하면 곧 함부로 잘난 체하여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 생각하고, 기이한 문장을 발견하면 세상에서 빼어난 학자로 여기고, 어려운 글자를 기억해내면 남보다 뛰어난 견해인 양 여기고, 우연히 세상에서 오독(誤讀)하던 글자의 독음이라도 깨달으면 그들의 무식함을 비웃지만 자신도 오독하는 것이 무수한 줄 알지 못하고, 우연히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궁벽한 시구절이라도 찾게 되면 남들의 고루함을 조롱하지만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 줄 알지 못한다.
혹자는 남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여 우물우물 얼버무려 자취를 가리고, 혹자는 식견이 어리숙한 자들에게 자랑하여 과장을 일삼아 명성을 훔치는데, 이러한 무리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전에 《운부군옥(韻府群玉)》을 보니 “촉(蜀) 땅에 납어(魶魚)가 있는데 나무를 잘 오르고 아이 울음소리를 낸다. 맹자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고, 명나라 문인의 《오잡조(五雜組)》에도 “지금 영남에 예어(鯢魚)가 있는데 발이 네 개여서 늘 나무 위를 기어오르고, 점어(鮎魚, 메기)도 대나무 가지에 오를 수 있으며 입으로 댓잎을 문다.”라고 하여 마치 맹자가 과문(寡聞)하여 잘못 말한 것을 저들이 홀로 박식하여 밝혀낸 것처럼 되어 있으니, 이것이 가장 가소롭다.(옮긴이 주: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의 동물 중에 모습이 사람과 비슷하거나 내는 소리가 아이 우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구전으로 인어(人漁)라고 불린 것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인어의 다른 명칭이 곧 납어, 예어다. ≪본초강목≫에서 예어(鯢魚)를 인어·납어(魶魚)·탑어(鰨魚)라고 하고, 제어(䱱魚)를 인어·해아어(孩兒魚)라고도 해설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여러 문헌들을 인용하여 인어를 더 구체적으로 다섯갈래로 구분하여 설명한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령 나무에 오르는 물고기가 있다 한들 특이한 물고기에 불과하니, 어찌 이것 때문에 연목구어(緣木求魚)를 결코 할 수 없는 일에 비유하지 못한단 말인가. 물고기가 물에 살고 나무에 살지 못하는 것은 상리(常理)이며, 나무에 오르는 물고기는 바로 무리(無理)한 중에 간혹 있는 경우이다.
맹자가 비록 이런 물고기를 알았더라도 비유가 잘못된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읽으면서 이것을 알았더라도 또한 반드시 의아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만약 이를 근거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말이 되겠는가.
옛날에 화서(火鼠)와 빙잠(氷蠶)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 “쥐는 불에서 살지 못하고, 누에는 얼음에서 기를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또한 화서와 빙잠을 알지 못한다고 기롱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관규여측(管窺蠡測)의 소견으로 함부로 타인을 논평하는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하니, 그 폐해는 결국 반드시 연석(燕石)을 보배로 여기며 화씨(和氏)의 박옥(璞玉)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산계(山鷄, 꿩)를 귀히 여겨 봉황이 상서롭지 않다고 비방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다. 식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찌 너무나 애석하고 크게 탄식하지 않겠는가.
※[역자 주]
1.화서(火鼠)와 빙잠(氷蠶) : 전설상의 동물이다. 남황(南荒) 밖의 화산(火山)에 무게가 100근, 털의 길이가 2척이나 되는 큰 쥐가 사는데 그 털이 실처럼 가늘어서 베를 짤 수 있다고 하고, 원교산(員嶠山)에 빙잠이 있어 상설(霜雪)로 덮어 놓으면 길이가 1척이나 되는 누에고치를 짓는데 이것으로 비단을 짜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고 한다.
2. 관규여측(管窺蠡測) : 대나무 통으로 하늘을 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소견이 좁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3. 연석(燕石), 화씨(和氏)의 박옥(璞玉): 송(宋)나라의 어리숙한 사람이 옥돌과 비슷한 연석을 보옥(寶玉)인 줄 알고 애지중지하다가 주(周)나라의 어떤 나그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는 고사가 있다. 《太平御覽 卷51 石上》 화씨(和氏)의 박옥(璞玉)은 춘추 시대 초(楚)나라 변화(卞和)가 초왕(楚王)에게 바친 옥돌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므로 임금을 속였다는 누명을 쓰고 두 번이나 발뒤꿈치가 잘렸으나, 끝내는 진가를 인정받고서 천하제일의 보배인 화씨벽(和氏璧)을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韓非子 卷4 和氏》
-윤기(尹愭 1741~1826), '한거필담(閒居筆談)'중에서,『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1책/ 한거필담(閒居筆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재식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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