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문장

세상에서 문장의 우열(優劣)은 독서량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은데, 이것은 어째서인가?


문장을 잘 말하는 자는 공을 하늘에 돌리지 않고 반드시 사람에게 돌리니, 사람의 솜씨가 하늘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문장가로서 타고난 재능이 표일하여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요컨대 모두 독서하는 선비입니다. 독서를 외면하고 문장을 말하는 자는 모두 문장을 모르는 자입니다.


아! 독서를 한다면 오하(吳下)의 아몽(阿蒙, 손권의 무장 여몽을 가르킨다. 손권의 권유로 늦게 전장의 군문에서 틈틈이 독서를 매진하여 뛰어난 식견을 가짐)도 괄목상대하는 유익함이 있을 것이고,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글자를 모르는 안천추(安千秋, 고대에 용맹을 떨치던 무장으로 안몰자(安沒字)라 불리우는데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을 비꼬는 뜻으로 후대에 사용됨)이니 단지 함께 밥만 한 번 먹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문장이라는 것은 반드시 절굿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노력을 들이고 호롱불을 밝혀 낮을 잇는 정성을 쏟아, 사람의 솜씨가 지극해진 뒤에 천기(天機)가 절로 움직여 호탕하게 가슴속에서 흘러나와, 쉽게 술술 나온다고 느껴져야 비로소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습니다. 어찌 신체의 크기와 힘의 강약이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어 존속되어서 인위를 용납지 않는 것과 같겠습니까.


지금 혹 조열도(趙閱道, 북송의 명재상)가 왕개보(王介甫 왕안석)를 꺾은 말을 끌어와 ‘상고의 문장은 독서와 관계되지 않았다.〔上古文章 不係於讀書〕’라고 한다면, 이는 꽉 막힌 논의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천지가 시작될 때에 사람이 먼저 있지 않았으므로 사람은 실로 조화 속에서 생겨난 것이니, 이것이 장자(張子 장재)가 ‘천지의 기가 생성시켰다.〔天地之氣生之〕’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후세에도 당연히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문장이 실로 독서에 달려 있고, 독서하는 방법은 본디 쉽지 않습니다. 만약 독서가 문장 짓는 데만 유용한 줄 알뿐, 지의(旨意)를 깊이 따져 보고 정수를 천천히 음미하여 마음에 이해되고 정신에 융회(融會)되어 손과 발이 저절로 춤추도록 하지 못하여,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놀아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고 읽은 뒤에도 이런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날마다 만 마디 말을 외고 해마다 천 권의 책을 다 본다고 한들 또한 문장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옛사람이 독서를 할 때, 많이 읽으려고도 하였지만 반드시 정밀하게 읽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황권(黃卷 책)을 펼칠 때에는 성현을 대하듯이 하고, 지난 역사를 열독할 때에는 오늘 아침과 저녁을 보는 듯이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긴요하게 보아야 하는 곳에 겸허하게 마음을 붙이고, 구절구절을 체득하여 완미하는 사이에 안목을 고상하게 붙입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정신을 활발하게 하고, 자신의 규모를 넓힙니다. 그런 연후에 문장을 지어보면, 조화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붓 끝이 춤을 추어 마치 도와주는 자가 있는 것 같음에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독서의 효과요 문장의 묘함입니다.


그렇지만 독서를 잘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의 높이에 달려 있지 독서하는 방법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재능을 가진 연후에야 독서의 방법을 알 수 있고 독서의 효용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막히고 가리어져서 결국에는 몇 겹의 장막에 가로막히니, 마음속의 생각을 펴 문장을 지어본들 필경에는 꽉 막혀서 생동하지 못하고, 속되어 전아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독서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문장으로 이름을 얻지 못한 자가 있으니, 어찌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이 있고 사람의 노력을 다한 연후에야 비로소 문장의 도를 함께 논할 수 있으니, 결코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며, 참으로 사람마다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 문장도 그러한데, 하물며 성인의 책을 읽고서 성인의 도를 구하는 자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읽어서 얻을 수 있다면 문장은 여사(餘事,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일 중요한 의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자들이 문장으로 표준을 삼음에도, 그 문장에서마저 역부족이라는 탄식이 없을 수 없으니 이것이 애석할 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바 ‘하늘에 돌리지 않고 반드시 사람에게 돌린다.’라고 하는 말을 여기에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위로는 성인의 도에 힘을 다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문장의 영역에 걸음을 펼치지 못하였으니, 늘 이것을 반성하기에도 여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집사께서 질문하시면서 단지 독서가 문장을 짓는데 힘이 된다는 설만을 언급하셨으니, 이것은 어쩌면 인이불발(引而不發, 활쏘기를 가르치는 자는 시위를 당기는 것까지만 도와주고 쏘지는 않는다는 뜻)하여 저의 의중을 살펴보려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삼가 제가 읽은 책에서 힘을 빌려 진술하고자 하오니, 그래도 될는지 여쭙습니다.


-윤기(尹愭 1741~1826), '문장〔文章〕',『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8책/ 책(冊)』-


▲원글출처: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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