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세상사는 바둑판과 같다 / 윤기
문(問): 사람들은 늘상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當局者迷, '바둑을 두는 당사자는 살피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은 그것을 살필 수 있다'(當局者迷, 旁觀見審)라는 고사에서 유래)’라고 말들 한다. 판국을 맡아서 판단이 흐려진다면, 반드시 당국자가 아닌 뒤에야 사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인가? (옮긴이 주: 당국자(當局者), '그 일을 직접 맡아 처리하는 자리에 있는 당사자')
답(答): 사람들은 모두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들과 달리 ‘당국자라야 판단이 흐리지 않으니, 당국자가 아닌 몸으로서 당국자를 두고 판단이 흐리다고 하는 자가 사리에 어두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사는 바둑판과 같습니다. 판이 갈려 새 판이 시작되면, 뒤의 판은 앞의 판이 아니고, 이 판은 저 판이 아닙니다. 이렇듯 일마다 하나의 판국이 있어 일이 변하면 판국도 변하며, 장소마다 하나의 판국을 이루어 장소가 바뀌면 판국도 바뀝니다. 판국은 천만 양태이지만, 맡는 사람은 본디 적임자가 있는 법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한 시대의 사람이 한 시대의 사업을 완료할 수 있어서, 재주를 다른 시대에서 빌리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탕 임금과 무왕이 펼친 한 판 바둑은 요순 이후로 제일 고수의 솜씨라고 할 수 있고, 한나라 고조가 선후 본말을 알고서 또한 풍진세상에서 국수(國手)가 될 수 있었으니, 이는 실로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둑판을 밀쳤던 장화(張華)는 바둑을 두는 사이에 이미 기미를 결정하였고, 별장에서 내기 바둑을 두던 사안(謝安)은 바둑판 가운데에서 지략을 운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당국자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겠습니까.
오직 저 화산(華山)의 노새를 탄 객만이 판국 밖에서 흐리멍덩하게 보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옆에 서서 엿보는 사이에 어느새 천하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떨어져, 부질없이 석실(石室)의 나무꾼이 바둑 구경에 정신이 팔려 도끼 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당국자와 당국자가 아닌 자의 차이입니다.
판국을 맡은 이후에야 형세를 살피는 것이 정밀하고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민첩하여,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기미에 앞서 알 수 있습니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언뜻 보면 혹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는 의심이 없을 수 없겠지만, 필경에 사업을 성취해 내는 자는 당국자에게 있지 당국자가 아닌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풍수를 보는 자에 비유해 보자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형상이 바뀌고 국면이 판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오직 현장에서 보는 자만이 세밀하게 살펴 향배를 정할 수 있고, 만약 백보 밖에서 본 사람에게 묻는다면 틀리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배를 부리는 자에게 비유해 보자면, 바람을 만나면 돛을 올리고 여울을 만나면 닻을 내리니, 또한 조종간을 잡은 자만이 키와 노를 움직여 좌우의 균형을 맞출 수 있고, 만약 물가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엉뚱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당국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대뜸 ‘당국자는 판단이 흐리다(當局者迷)’라는 것을 논한다면, 옥을 조각할 때에 옥공을 가르치고 글씨를 쓸 때에 옆에서 팔꿈치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으니,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또 논해 보건대, 판단이 흐리지 않다는 것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판국을 맡아서 판국을 마치는 자도 실로 판단이 흐리지 않거니와, 판국을 맡지 않아서 판국의 형세를 아는 자도 판단이 흐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판단이 흐리다는 것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판국을 맡아서 판국을 망쳐 버린 자도 실로 판단이 흐리거니와, 판국을 맡지도 않았으면서 억지로 판국을 논하려고 하는 자도 판단이 흐림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판단이 흐린 것과 흐리지 않은 것의 구분은 단지 잘하고 못하고에 달려 있을 뿐이니, 또 판국을 맡았는가 맡지 않았는가를 논할 필요가 무에 있겠습니까.
이제 불가(佛家)의 이야기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부산(浮山)의 법원사(法遠師)가 맑은 대자리를 깔고 시원한 발을 드리운 채 구경하면서 승패의 묘수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다만 ‘말해 보시오. 흑백이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에 어느 곳에 한 점을 놓을 것인가?’라고 하고, 또 ‘종래에 바둑판 열아홉 개의 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르쳤는고?’라고 하니, 구양수(歐陽脩) 같은 고수로서도 자신도 모르게 오래도록 탄복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판국 밖의 사람으로서 판단이 흐리지 않은 자입니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판국을 말하는 순간 이미 ‘판단이 흐리다〔迷〕’는 한마디 말의 테두리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니, 이기는 것도 흐린 것이고 지는 것도 흐린 것이며, 흐리다고 하는 것도 흐린 것이고 흐리지 않다고 하는 것도 흐린 것입니다. 반드시 판국을 초월하여 판국에 국속되지 않은 뒤에야 흐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당상(堂上)에 있는 사람이라야 당 아래의 곡직(曲直, 굽음과 곧음, 즉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으니,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있게 되면 판별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판단이 흐려지지 않을 수 있는 방도는 오직 당국자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당국자는 또 제 스스로 판단력이 흐리지 않다고 여겨서 옆에서 관망하는 자의 의견을 무시해서도 안 되니, 이것을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유가(儒家)가, 흑과 백 가운데 어느 하나에 치우치는 사사로움이 없지 못하여 미혹의 구덩이 속에 떨어지게 된다면, 저들의 키득거리는 조소를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당국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매번 천 봉우리의 산에 달이 서늘하고 온갖 종류의 꽃이 흐드러진 때를 만나면 아득히 내가 하나의 판국인지 임금님이 몇 개의 판국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 책제를 받들고 보매 밝은 질문이 여기에 미쳤으니, 제가 어리석지만 판국 밖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 말 없이 물러날 수 있겠습니까?
※[역자 주]
1. 화산(華山)의 객 : 노새를 탄 객은 후주(後周) 말엽의 화산처사(華山處士) 진단(陳摶)을 말한다. 진단은 《주역》에 능했다. 전설에 의하면, 진단이 일찍이 자신의 사주를 짚어 보니 천자가 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100일 동안 잠을 자며 기회를 기다리다가, 흰 나귀를 타고 변주(汴州)에 들어갔다. 중도에 자신과 사주가 같은 송 태조(宋太祖)가 천자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단이 어이없어 크게 웃다가 나귀 등에서 떨어져서는 “천하가 이 사람에게 정해졌다.〔天下於是定矣〕”라고 하였다. 이윽고 그 길로 화산에 들어가 도사가 되었다. 《聞見錄》
2. 여산(廬山)의 진면목 : 소식(蘇軾)의 시 〈제서림벽(題西林壁)〉에 “옆으로 보면 잿마루요 비스듬히 보면 봉우리라, 원근과 고저에 따라 모습이 같지 않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로세.〔橫看成嶺側成峯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한 것을 말한다.
3. 당상 위에 있는 사람: 정호(程顥)가 한 말이다. 정호는 “맹자의 지언은 마치 사람이 당 위에 있어야 당 아래에 있는 사람의 곡직을 분별할 수 있고, 만약 스스로 당 아래로 내려가면 도리어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自下去堂下 則却辨不得〕”라고 하였다. 이 말은 본래 《이정유서》 권3에 실려 있는 말인데, 《맹자》 〈공손추 상〉 지언장(知言章)의 주에 인용되었다.
-윤기(尹愭, 1741~1826), '당국자미(當局者迷)', 무명자집(無名子集) / 무명자집 문고 제8책 /책(冊)-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3
'고전산문 > 무명자 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레와 짐승에게서 배운다 (雜說 三) (0) | 2017.12.23 |
---|---|
천하의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다 (0) | 2017.12.23 |
본 바탕이 물들어서는 안된다 (0) | 2017.12.23 |
밥벌레와 사람의 차이 (0) | 2017.12.23 |
첨설(諂說):아첨에 대하여 (0) | 201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