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깨닫고 대처함이 현명한 것
논하는 자들은 권모 술수를 쓰는 것은 손무자(孫武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온갖 모략이나 술책을 부리는 것을 가리켜 권모술수라 한다. 그 정도(正道)를 버리고 기발하고 교묘한 계책(奇謀)에 집착하며, 의(義)를 등지고 상대를 속이는 기술(詐術)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正道)와 의(義)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권모술수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써야 할 상황이 있고, 또 반드시 사용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말에도, “남이 나를 속일 것을 미리 짐작하지 말아야 하고, 남이 믿지 않을 것이라 억측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지라도, 먼저 깨닫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아무리 정도를 지키더라도, 나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적은 나를 이기기 위해 반드시 속이는 기술(詐術)을 사용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먼저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그 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의 승패가 걸린 싸움의 상황에서 도덕과 윤리는 여기에 개입할 자리는 없다. 먼저 깨닫고 안다면, 어찌할 수 없이 온갖 기묘하고 기발한 꾀(奇謀)를 다 동원하여 이에 대비하고 응함은 마땅한 일이다.
공자께서 송나라 대부(大夫) 환퇴(桓魋)가 길목을 숨어 공자를 죽이려하자, 초라한 행색으로 변장을 하고 송 나라를 지나간 것, 그리고 강요된 맹서(要盟)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여, 맹약을 저버리고 초 나라로 간 것은 권(權, 도리로써의 원리원칙을 적용하는 융통성,유연성)이지 경(經, 도리의 기준이되는 원리원칙)이 아니다.
권과 경이 구별이 있으니, 주자(朱子)가 이미 명확하게 말하였다.(해설참조: ☞논어주소, 자한 30장) 복병(伏兵)을 두고 기발하고 교묘한 계책(奇謀)을 써서 적이 예상치 못한 가운데 그 기세(勢)를 꺽고 패하게 만드는 것은 전쟁터에서는 마땅한 일이다. 다만 평상시에는 차마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싸움터에서 적에게 내 의도를 반드시 명백하게 밝히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행동을 반드시 공명정대(正大)하게 한다면, 적이 내 쪽의 할 일과 움직임을 미리 다 아는 바가 된다. 따라서 적은 이에 맞춰 공방태세를 물샐 틈 없도록 치밀하게 갖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전장터에서 도덕과 윤리와 정의를 따지며 요행히 승리를 바라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송양공(宋襄公)*과 진여(陳餘)*가 아주 오랜 세월(千古)에 걸쳐 천하에 웃음거리를 남긴 것이니, 이를 어찌 정의롭고 옳다고 하겠는가?
( ※참조: 번역글을 필사하고 옮기면서, 개인적으로 글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살피는 이해를 돕는 차원으로, 번역글을 완전 표절 및 참조하여 나름 풀고 의역하였다)
※[역자 주]
1. 송양공(宋襄公) : 《좌전》희공 23년에 송양공이 초(楚)와 싸웠는데, 초의 군대가 홍수를 반쯤 건넜을 때 사마자어(司馬子魚)가 공격하기를 청했으나, 양공은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듣지 않았다. 물을 다 건너고 나서 미처 대열(隊列)을 정리하기 전에 다시 공격하기를 청했으나 역시 듣지 않고는 초의 군대가 다 정돈하기를 기다려 싸우다가 완패하였으므로 세상에서, ‘송양의 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이를 비웃었다.
2. 진여(陳餘) : 장이(張耳)와 사생(死生)을 같이하기로 했다가 뒤에 서로 틀려서 장이는 한고조를, 진여는 조왕(趙王)을 섬겼다. 한고조가 초(楚)를 치면서 조(趙)의 협력을 청하자, 진여는 장이의 목을 베어 보내기를 요구했다. 한고조는 모습이 장이와 비슷한 자의 목을 베어 보냈는데, 진여는 속아서 군대를 보내 도왔으며, 뒤에 한고조는 장이를 보내 조의 군대를 정경(井陘)에서 깨뜨리고 진여를 저수(沮水) 위에서 목베었다. 《史記 張耳陳餘列傳》
-이익(李瀷, 1681~1763), ☞'군정서(軍政書)' 중에서,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7권/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석 정원태 한영선 (공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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