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독서(有求讀書): 마음의 양식이 안되는 독서

구하는 바가 있어 글을 읽는 자는 아무리 읽어도 소득이 없다. 그러므로 거자업(擧子業 과거를 위해 하는 공부)을 하는 자는 입술이 썩고 치아가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러도 읽기를 멈추기만 하면 캄캄하므로 마치 소경이 희고 검은 것을 말하면서도 그 희고 검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그 말하는 바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오는 것에 불과하므로 마치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도로 토해내면 신체(肌膚)에 이익됨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기(志氣)도 괴려(乖戾, 이치에 어그러져 온당치 않음)하게 되는 것과 같다.


배우는 도(道)는 스승을 엄하게 대하는 것이 어렵다. 스승이 엄해진 뒤에 도가 높아지고 도가 높아진 뒤에 경학(敬學)을 알게 되므로 태학(太學)의 예(禮)에 비록 천자에게 가르치더라도 북면(北面)하는 일이 없었으니, 스승을 엄하게 대함을 이름이다.


학업(學業)에 있어, 보지 못하였을 때는 상서스러운 봉(祥鳳 봉황)이 우연히 산모퉁이에 이르렀는데 걸음이 느려서 미처 보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같이 하고, 이미 보았을 때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오랫동안 잃었다가 다시 만난 것같이 하며, 학업을 강논함에 있어서는 자식의 병에 고명한 의원을 찾아 묻는 것같이 하고, 마음으로 얻은 바가 있을 때는 길에서 더위를 만나 갈증이 심할 때 청량한 음료를 마시는 것같이 하며, 실천함에 있어서는 보검(寶劍)을 갈아서 시험삼아 베는 것같이 하므로 이를 이르되 눈으로 보고(眼頭過), 입으로 굴리고(口頭轉), 마음으로 융통하고(心頭運), 손으로 놀리는(手頭措) 바가 모두 들어맞는다는 것이니, 그 다행함을 가히 알 수 있다. 


옛적에 남영주(南榮跦)가 노담(考耼 노자(老子))을 만나서 기러기처럼 뒤따르되 그 그림자를 밟지 않으며 기(夔)처럼 멈추고 뱀처럼 나아가서(夔立蛇進) 한 마디의 가르침을 받고는 마치 10일간 굶주렸다가 태뢰(太牢, 통채로 바쳐지는 제사용 제물 소)를 얻은 것같이 여겼다고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이익(李瀷, 1681~1763), '유구독서(有求讀書)',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3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78


※[옮긴이 주


1.북면(北面):  북면(北面)은 신하가 위치하는 자리, 그 반대로 남면(南面)은 왕이 위치하는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논어 옹야편에는 공자의 제자인 염옹과의 문답에서 공자는 '옹야가사남면(雍也可使南面)' 즉 '염옹은 왕이 될만한 자질을 가졌다'고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역정의에 역(易)이 가지고 있는 뜻, 세 가지(역, 변역, 부역) 중에 '변하지 않는 역(不易, 임의로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것)'을 주석 정의하는 대목에서  "부역(不易)이란 그 자리(위치)를 말함이다.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인군(人君)은 남향(君南面)하고 신하는 북향(北面)을 하며, 아비는 앉아있고 자식은 엎드려있으니, 이것이 바로 부역(不易)이다.(성백효역)"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북면한다'는 말의 의미는 군신관계에서 신하된 자가 임금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실제로 공식석상에서 군신이 마주 대할 때 왕은 남향해서 신하를 바라보고, 반대로 신하는 북향해서 왕을 바라보는 자리에 고정적으로 위치하였다고 한다. 성호선생의 글에 따르면, 배움의 자리에서 오직 스승만은 예외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 글의 요체는 스승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배움에 임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에 관한 것에 있다.


2.  기(夔): 고대 전설에 나오는 다리가 하나이고 뿔이 달리지 않은 소의 형상을 한 동물이다.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의 뜰에서 군신(軍神) 치우(蚩尤)와 싸울 때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기(夔)의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뇌수(雷獸)의 뼈로 북채를 만들었다. 우렁찬 북소리에 힘을 얻은 황제가 거느린 군사들이 용기백배하여 치우를 물리칠 수 있었다.(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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