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부정(善惡不定): 악하고 바르지 못한 품성에 대하여
공자가, “상지(上智, 보통사람보다 지혜가 매우 뛰어남 또는 그런 사람)와 하우(下愚, 아주 어리석고 못남 또는 그런 사람)는 옮겨지지 않는다(唯上知與下愚 不移 유상지여하우 불이, 즉 '오직 선천적으로 매우 지혜로운 사람과 매우 어리석은 사람은 서로 바뀔 수 없다.' /논어 양화편).” 하였으니, 이 두 가지 품(品) 이외는 모두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옮긴이 주: 상지와 하우는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과 연결지어보면 이해가 좀 더 쉬워지겠다. “공자 왈,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사람이 상등(上等)이고, 배워서 안 사람이 그 다음이고,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배운 사람이 또 그 다음이니, 힘들다고 배우지 않는 그 사람이 바로 최하등의 사람이다.”)
매양 사람을 시험해 보면 중인(中人)의 성품은 본래 정하여진 것이 아니라 거의가 이익과 명예로 인하여 점차 거기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혹 우연히 한 가지 선(善)을 행하면 곧 자호(自好, 스스로 만족하고 좋아함)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사람들도 모두 미루어서 추앙하므로 여기에 흥기되어 선을 점차로 더하게 되고, 또 어쩌다가 옳지 못한 것을 범하면 사람들이 모두 비루하게 여기므로 선으로 향하는 뜻이 게을러지고 노여움이 격동되어 그른 줄 알면서도 점점 악한 짓을 하여 꺼리지 않게 되며, 또 혹시 권세와 명리에 유혹되어 작은 잘못이 점점 많아져서 선한 것은 도움이 없고 악한 것은 반드시 그 방편을 얻어 더욱 사람의 심술(心術)을 고혹(蠱惑, 성적인 아름다움이나 매력에 홀려서 정신을 못차림, 즉 이 문장에서는, '바르지 못한 것들이 선을 가려 악을 합리화하고 더욱 강화시킨다'는 뜻)시킬 수 있다.
세상에서 공훈을 세워 제왕이나 장상에 이르는 것도 거의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9층의 섬돌(돌계단)을 쳐다보면 비록 까마득하지만 한 층을 오르고 보면 바야흐로 2층에 올라가고 싶은 의욕이 생겨 점차 정상에까지 오르게 되듯이, 찬역을 꾀하다가 주륙(誅戮)을 당하여 멸망하는 자도 거의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둔 것은 아니다. 혹 공이 점점 높아지고 세력이 점점 위태하여질수록 거기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점점 깊어지고 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지므로 비록 악한 일을 하지 않고자 하나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이익(李瀷, 1681~1763), '선악부정(善惡不定)',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3권/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78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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