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반드시 의심을 가져야 한다

(상략) 살펴보건대, 양(梁)나라 간문제(簡文帝)의 〈사칙뢰중용강소계(謝勅賚中庸講疏啓)〉를 보면 “천지의 으뜸이 되는 법으로, 나가서는 충성하고 들어와서는 효도하는 도는 실로 가르침을 확립하는 관건이요, 덕행의 목표이다. 천년 전에 성인이 큰 교훈을 받들지 않았다면 구경(九經)의 질서를 알고 두 학문의 극치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니, 아아, 위대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양나라 황실의 부자는 배우기를 좋아했으나 실천이 없어서 마침내 나라가 망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좋아하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은 자일 것이다. 어찌 이런 세상에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도 자기 한 몸을 처신하지 못하여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이 또한 학자들이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알맞은 사람이 아니면 말해도 도움이 없으며, 도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혹 도리어 이적(夷狄, 랑캐, 여진족을 멸시하여 이르는 말)의 호법(護法)이 된다. 불교 육조(六祖)의 말에 “선(善)도 생각하지 않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미발(未發)한 상태이다.”라고 하였는데, 소자유(蘇子由)가 이 말을 얻어 부회하여 말하기를 “중(中)은 본디 생각에 미치기 전의 상태이다.” 하였으니, 자못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공부[戒愼恐懼]가 불가에는 애초 이런 경지가 없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구절구절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라고 하였으니, 소자유에게 무엇을 책하겠는가. 


그러므로 말로 사람을 깨우치기에 부족하고 오직 적합한 사람이어야 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으면 마치 강가에서 물을 파는 것과 같아서 하루 종일 다니더라도 팔 수 없을 것이다.《중용장구(中庸章句)》가 세상에 행해지면서 사람들이 일월(日月)처럼 존숭하고 사시(四時)처럼 믿고 가족처럼 아끼고 형벌처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연구하여 터득하고 터득하여 행하기를 마치 일상생활에서 밥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하지 못하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비유하자면, 집안 어른이 집안 모든 일을 조금의 빈틈도 없이 가지런히 정돈하였기 때문에 여러 자제들이 그것만 믿고 의지하고 중히 여길 뿐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기면 번번이 말하기를 “우리 부형이 반드시 대처할 것이다.” 하나, 따져 보면 발명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이는 가르침을 어기는 것과는 차등이 있지만 무지몽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학문에는 반드시 의심을 가져야 한다(學必要致疑). 의심을 가지지 않으면 얻더라도 견고하지 못하다. 이른바 의심이란 쓸데없이 의심하여 우물쭈물하며 결정하는 바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이러해서 옳다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이러이러해서 잘못되었다는 것도 겸하여 살펴야 비로소 견득(見得)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혹 그른 것을 옳다 하여도 장차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과일을 먹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 복숭아와 살구 따위를 주면 그 과육만 씹어 먹고 씨를 버리는 것은 과일의 맛이 과육에 있기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오히려 씨 안에 다시 더 좋은 맛이 있지 않을까 의심해야 한다. 다른 날 개암과 밤 따위를 주면 그 껍질을 벗기고 그 씨를 먹으니, 그 맛이 씨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번 복숭아 씨의 맛이 씨를 먹을 수 있는 개암과 밤의 그것처럼 맛있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가령 당시에 모두 깨물어 봐서 분명히 알았다면 어찌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의심을 하는 것은 의심을 없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저 과육만 먹고도 의심치 않는 자는 비록 밤송이를 씹어 먹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장차 따라 할 것이다.


송(宋)나라 이후 학자의 폐단이 대체로 이와 같은데, 우리나라는 더욱 심하다. 처음엔 믿고 의심치 않다가 중간엔 존숭하기만 하고 공부해 익히지 않으며, 나중엔 내버려 두고 생각조차 않는다. 이는 적국이 침략할까 하는 근심이 없는 나라가 정신이 해이하여 노는 것으로 습관을 삼는 것과 같다. 세상에 참된 학자가 없어서 자세가 그렇게 된 것이다. 


어찌 이것이 군자가 후인에게 바라는 것이겠는가. 나는 일찍이 말하기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어렵고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 하였다. 가령 경(經)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옛 훈고(訓詁)만 그대로 고수하고 논의하는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남을 따라 웃기만 하는 것과 같아서 끝내 자신의 견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리저리 찾고 널리 연구하여 끝내 증명해 내고자 한다면,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함부로 논의하는 것과 비슷해서 죄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흐리멍덩하기보다는 차라리 따지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제자의 직분은 오로지 가르침을 받아 따르되 자신을 속이는 데에 이르러서는 안 되며, 의난처(疑難處, 의심스런 점이 있는 곳)를 발하되 등급을 뛰어넘어 쉽게 여기는 잘못이 없어야 하니, 이것이 범함도 없고 숨김도 없는 기상이다. 이 말을 내가 진실로 좋아하면서도 몸소 실천하지 못하였다. 


이 책은 주자 《중용장구》의 뜻을 굳게 지키고 감히 바꾸지 않았으나 《중용장구》에서 말하지 않은 것을 때로 혹 말하기를 꺼리지 않았으니, 그 의도는 다만 지름길을 찾아서 주자의 본뜻으로 돌아가기를 힘쓴 것이다. 만일 《중용장구》 외에 한 글자라도 보태는 것이 모두 외람된 짓이라고 한다면, 이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자의 뜻을 아는 방법도 아니다.


-이익(李瀷, 1681~1763), '중용질서후설(中庸疾書後說)'부분, 『성호전집 제54권/ 제발(題跋)』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성애 (역)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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