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하문(不耻下問)

문(文)이란 도(道)가 붙여 있는 것이다. 위에서 나타나는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은 천문(天文), 밑에서 나타나는 산천과 초목은 지문(地文), 이 천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예악형정(禮樂刑政)과 의장도수(儀章度數)는 인문(人文)이라 하는데, 《주역》에 “인문을 보아 천하를 잘 되도록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성인(聖人)은 여러 가지의 절도를 꼭 이치에 맞도록 하여 천하를 바른 길로 통솔하는 까닭에 “글로 가르친다[文敎].”고 했는데, 이는 문왕(文王)이 그렇게 했던 것이다. 공자(孔子)가 지위는 얻지 못했어도 오히려 목탁(木鐸)이 되어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친 결과, 도(道)가 다 없어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졌기에 “문(文)이 여기에 있지 않느냐?[文不在茲乎]”고 하였으나 그 생각만은 역시 슬프고 간절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것은 지적해서 깨우칠 수 있고, 조금 먼 것은 이야기로써 전할 수 있지만, 백 세대 뒤에는 그 뜻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옛사람이 문자와 글을 만들어서 후세 사람에게 거듭거듭 타이르고 이 글로 인해 도(道)를 깨닫도록 하였으니, 이도 역시 문(文)이라는 것인데 이 문이란 도의 그림이다.


그러나 천지는 자연이고 사람의 일은 인위적이기 때문에 고금 풍속이 시대에 따라 다르고 언어가 지방에 따라 다르다. 오늘의 생각으로 저 좀먹은 책과 먹으로 그린 그림 사이에서 옛날 성인(聖人)의 마음을 상상하여 그 속에 깊이 쌓인 바를 어찌 쉽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정성을 쏟고 힘을 다해서 널리 찾아 옛사람의 본뜻을 깨달으려고, 여럿의 말을 모아 가리되 비록 농담과 망설(妄說)일지라도 자세히 살피고, 진실로 괴상하고 잘못되어 이치에 어긋난 말도 용납하여 허물삼지 않는다. 이것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不耻下問].”는 말이 생기게 된 이유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진 임금이 처음으로 즉위(卽位)하여 잘 다스릴 마음이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심해서 조서(詔書)를 내리고 직언(直言)을 구한 결과, 사방에서 답지(遝至)한 여러 의논을 그 중 착한 것은 상주고 착하지 않은 것도 벌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또 비유하면 마치 어떤 병자가 의술이 용한 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먼 길도 꺼리지 않고 그를 찾아가 혹 도움이 있을까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고, 또는 어떤 나그네가 해 저문 갈림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방향을 모르게 되면 초부(樵夫) 목동(牧童)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부인과 어린이라도 일일이 찾아서 갈 길을 묻는데, 이 중에 혹 속이기도 하고 잘못 가리키기도 한 것을 모두 따질 수가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인데, 소위 “꼴 베는 아이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옛말이 바로 이것이다.


선유(先儒)는 글을 강론하는 데에 이와 같이 힘껏 하였기 때문에 10분의 7~8분쯤은 능히 깨달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2~3분쯤은 의심스럽고 깨닫기 어려운 곳이 없지 않아서 후세의 아는 자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마음은 천지와 같이 공정하고 그 사업은 성인(聖人)과 같이 커서 한 개의 넓은 법문(法門)을 세우고 백 세대 뒷사람들과 함께 그 마음을 같이 한 것이다.


지금 학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금망(禁網, 해놓은 테두리 이외에 다양한 생각이나  의사표현을 아예 금기시하여 막아 놓은 것을 의미)을 설치해 놓고 칼과 톱으로써 사람을 기다린다. 조금 아는 것 외에는 입도 열지 못하고, 대추를 씹지도 않고 그냥 먹는 것처럼, 견양(물이 아닌 견본으로 그린 형상을 뜻함)만 보고 오이를 그리는 것처럼, 아무 맛도 의미도 모르면서 억지로 대답하는 것을 고상한 취미로 여긴다. 그 뼈와 살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깨닫지 못하므로 소위 유자(儒者)로 자부하는 자가 소털처럼 많아도 그 중에 참으로 깨달은 자는 기린처럼 보기가 어려우니 슬프다.


-이익(李瀷, 1681~1763), '불치하문(不耻下問)', 『성호사설(星湖僿說) 제21권/경사문(經史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7


※[옮긴이 주] 불치하문(不耻下問) :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논어, 공야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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