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식견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이 일찍이 여러 사람과 한자리에 모였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도 아니요 우리보다 뒤지지도 않았네(不自我先不自我後)*.”라는 말을 인용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탄식하자, 현곡은 “이 난리가 우리보다 먼저 났으면 우리들의 조상이 당했을 것이요, 우리보다 뒤에 났으면 우리들의 자손이 당할 것이니, 차라리 우리들이 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논평하는 자들이 이치에 통달한 말이라고 하였다.
또 학사(學士) 한 사람이 책을 절반도 보기 전에 땅에 던지면서 탄식하기를 “책을 덮으면 곧바로 잊어버리니 본들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하자, 현곡은 “사람이 밥을 먹으면 항상 뱃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나 그 영양분(營養分)이 또한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니, 책을 읽어 비록 잊어버리더라도 스스로 진취(進就)의 효과가 있다.”라고 했으니, 응변(應辯, 임기응변, 권도)*에 능하다 할 만하다.
[역자 주]
1.조현곡(趙玄谷) : 조현곡의 이름은 위한(緯韓)이고 문신으로, 명종 13년(1558)에 나서 인조 27년(1649)에 죽었다. 《類選》 卷9下 經史篇8 論史門.
2. 不自我先不自我後: 이 말은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 장과 대아(大雅) 첨앙(瞻卬) 장에 보인다.
-이익(李瀷, 1681~1763), '조현곡(趙玄谷)',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1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지상 (역) ┃ 1978
[옮긴이 주]
1. 관점(觀點): 1)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2)[북한어] 사물과 현상에 대한 견해를 규정하는 사고의 기본 출발점. (네이버 사전)
2.식견(識見): 학식과 견문이라는 뜻으로,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이르는 말. (네이버 사전)
3.응변(應辯): '그때그때 처한 사태에 맞추어 즉각 그 자리에서 결정하거나 처리한다'는 의미의 임기기응변 (臨機應變) 을 줄인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생각해보노라면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다루는 임기응변의 뜻보다는 ☞권도(權道)에 가깝다. 권도란, '☞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임시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행위규범'(권정안,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이라 정의된다. 권도의 권(權)은 물건의 무게를 재는 저울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권도는 모든 상황과 상태들이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으로 보고, 상황성과 상대성을 그 전제로 한다, 이때문에 권도는 일정하고 불변적인 행위규범(도그마)을 가지지 못하며 그때마다 다른 행위양식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가진다. 지혜를 떠올리는 임기응변과 달리 권도는 공자사상의 실천적 정수로써 권도의 기준은 도(규범, 법, 도그마)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인간됨)에 있다. 따라서 권도는 개인의 인격적 소양과 공부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관점과 식견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권도를 행할 때는 방법이 있으니, 남을 죽여서 자신을 살리거나 남을 망하게 하여 자신을 보존하는 행동을 군자는 하지 않는다" -춘추좌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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