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까닭
듣지 못하는 것을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것을 소경이라 하는데, 이것은 천벌[天刑]이지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면 귀머거리ㆍ소경과 뭐 다르겠는가? 이런 자를 남들이 귀머거리와 소경이라고 하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니 그 병통이 너무나 심하다. 비록 보고 들으려고 해도 형체와 소리가 멀리 막혀서 그 총명을 쓸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모두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정성만 있다면 또한 형체와 소리 밖의 것도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사물(事物)의 진가와 길흉이 어찌 신령하고 미묘한 마음을 막아 가릴 이치가 있겠는가?
옛날에 아주 큰 귀머거리와 소경이 있었으니 걸(桀)과 주(紂)란 자이다. 처음에는 용봉(龍逢)과 비간(比干) 같은 충신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들의 간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체 듣고도 못들은 체하다가, 나중에는 군자(君子)가 멀리 떠나고 소인이 눈과 귀를 가리자, 비록 태산(泰山)이 무너지고 우렛소리가 진동하여도 그는 깨닫지 못했으니, 이로 본다면 후세에 나라를 망친 임금들은 소걸(小桀)과 소주(小紂)에 불과하나, 대신(大臣)은 은총만을 바라서 간하려 하지 않고, 소신(小臣)은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말도 하지 못했으니, 비록 나라를 잃지 않고자 하였으나 될 수 있었겠는가? (중략)
대개 사람의 마음은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고 바른 말을 싫어하여, 바른 말을 하면 손해가 생기고 아첨하는 말을 하면 이익이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말이 용납될 때는 간혹 있었으나 아첨하는 말로 죄를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세상에 누가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위험한 데로 나아가기를 좋아하겠는가? (이하생략)
.-이익(李瀷, 1681~1763), '간직(諫職)',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0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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