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의태(小人意態):소인의 생각과 행동
소인의 생각과 행동은 여자와 같다. 여자는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굴 모습을 예쁘게 꾸미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머리에는 가발을 쓰고 낯에는 분과 기름을 바르는데, 이는 자기 눈에 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고 모두 예쁘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아양떠는 웃음과 부드러운 말씨로 앞뒤를 재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큰 수치로 생각한다.
대개 소인들은 자기 집에서는 험한 음식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남을 대할 때 떨어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면서 혹 저자에 나갈 때면 반드시 좋은 의복을 입으려 하여 심지어 이웃집의 의복을 빌어 입고 남에게 뽐낸다. 혹 자기보다 더 낫게 입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의 옷차림이 그만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비록 집안 살림을 다 들여서라도 남보다 더 잘 입어야 하겠다는 생각만 가지니, 이는 다만 속이 비었기 때문에 겉치레만 힘쓰는 것이다.
자로(子路)가 떨어진 옷을 입고도 남 대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분수만을 지키고 겉치레를 원하지 않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진실로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긴 옷자락과 넓은 소매를 무엇 때문에 싫어할 이유가 있겠는가?
무릇 예가(禮家)에서 마련한 의상(衣裳) 제도는 다만 정도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지, 누구든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므로 상제(喪祭)처럼 큰 예절에도 전지가 없어서 농사 짓지 못하는 백성은 자성(粢盛)을 쓰지 않고, 가난해서 길쌈하지 못하는 집안은 최복(衰服)을 입지 않아도 군자(君子)는 허물하지 않는다.
고례(古禮)는 그만두고라도 간략하다는 《가례(家禮)》의 의식마저도 가난한 자는 그대로 다 행할 수 없다. 소위 사당(祠堂)의 제도, 염장(斂葬)의 기구, 궤향(饋享)의 절차, 거가(居家)의 의식 등은 적은 돈으로 마련할 수 없는 것인데, 주자(朱子)가 어찌 집집마다 꼭 이와 같이 하라고 했겠는가? 이러므로 혼례(婚禮)처럼 중한 일에도 비녀ㆍ팔찌ㆍ과실 따위만 쓰도록 하고 딴 것은 자기 형편에 따라 알맞게 하라 하였다.
이로 본다면 예(禮)를 마련함에 있어서는 빈천한 이를 표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비록 천자(天子)의 원자(元子)라 할지라도 처음 날 때는 빈천뿐인데, 하물며 선비의 부귀(富貴)는 혹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하여 본래부터 지닌 것이 아니니, 어찌 혹 오는 것으로써 본분(本分)의 법을 삼아서야 되겠는가?
세상 사람은 이런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온갖 문서(文書)에 씌어져 있는 것만 따지면서, 꼭 그대로 하는 것을 서로 높은 척하고, 미치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는 비웃기만 한다.
저 속마음이 튼튼치 못해서 남을 잘 따르는 무리는 제 분수를 모르고 호화롭게 지내는 경상(卿相, 높은 지위와 부귀를 누리는 자들)만을 꼭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갖 재물을 그릇되게 쓰니, 공사의 재정이 어찌 탕갈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므로 나는, 지금 세속에는 저 짙은 화장을 하고 놀아나는 여자와 다른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익(李瀷,1681~1763), '소인의태(小人意態)', 성호사설(星湖僿說)/ 성호사설 제10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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