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끝까지 듣고 읽어봐야


조급한 사람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거나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모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내가 이미 여기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일찍이 이 같은 사람에게 고하여 말했다. 


“그대가 경전에 통하지 못한 까닭에 이 같은 병통이 있다 .가령 그대가 내개 <맹자>를 배운다고 치세. ‘맹자께서 평륙(平陸)에 가서 그 대부(大夫)에게 이르기를’이라 한 대목에 이르면 그대는 분명히 ‘평륙’ 대부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가요?‘하고 물을 것이다. 나는 아무 대답 않고 그 아래 글을 읽게 하겠지. 


’이것은 거심(距心)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게 되면, 그대는 반드시 또 ’이름이 거심이면 성은 뭡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또 대답하지 않고 그 아래 글을 읽게 할 것이다.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이다 ‘라고 한 대목에 이르게 되면 그대는 틀림없이 머쓱해서 경솔히 물은 조급함을 뉘우치게 될 것이다. 


<맹자>의 이 단락은 글 쓰는 법이 몹시 뛰어난 곳이다. <좌씨전>은 한 사람을 두고 이름과 자(子), 직위와 시호를 뒤섞어서 같이 부른 것이 아주 많다. 처음 읽게 되면 한 사람인줄 알아차릴 수가 없는데 자세히 살피고 나서야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자네같은 사람은 틀림없이 찬찬히 살펴보지도 않고서 서둘러 물었을 걸세. 천지의 조화와 성현의 말씀에는 대개 이 같은 것이 많다네. 어찌 일찍이 자네를(자네 같은) 조급한 사람의 편리를 위해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문득 맨끝에 안배해야 할 것을 뒤집어서 한 상에 섞어 꺼내 분명히 보여주겠는가? 


<맹자>와 <좌전>을 찬찬히 읽어보면 이 같은 병통을 고칠 수가 있네. 그래서 ’경전의 뜻에 통하지 않고는 온갖 일을 깨달을 수가 없다 ‘고 말하는 것이야.”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수여방필(睡餘放筆) 중에서


▲번역글 출처: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 - 홍길주의 수여방필 4부작』(정민 역, 돌베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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