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 없어 깨닫지 못하는 것도 있다
지금 사람들은 문학과 사공(事功, 일의 업적, 공적)과 기술 등의 방면에서 남을 헐뜯어 비웃지 않으면, 자기가 익히던 것을 버리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옮겨가곤 한다. 둘 다 잘못이다. 자기에게서는 좋은 것을 가려서 굳게 지키고, 남에게서는 장점을 취해 아울러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군자라 한다.
세상에 기뻐할 만한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진보하는 것이고 천하에 미워할 사람이 많으면 이는 내 덕이 날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은 소식(蘇軾, 소동파)의 「강설剛說」에 나오는 격언이다. 내가 일찍이 스스로 내 마음에 시험해보았지만, 끝내 절실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점점 인정함이 많아지고 배척함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어찌 내 문장의 경지가 거칠게나마 예전보다 진보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헤아려보건대, 덕에 나아가는 경계도 대개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덕이 없는 까닭에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세상의 선비는 제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더라도 늘 머뭇머뭇 참아 견디며 그 자리에서 꾸짖어 배척하지 못한다. 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견디기 힘든 사람에 대해서 조롱과 염증이 쌓이는데도 겉으로는 너그러움을 보인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거만하게 같은 무리에 섞이게 한다. 이것이 비록 후덕한 듯해도 실은 크게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또는 벗과 교유하는 즈음에 책선하고 권면하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가 드물다. 설령 드러내놓고 나쁜 점을 지적하여 그가 언짢아 기분 나쁘도록 할 수는 없다 해도, 마땅히 합당치 않음을 대략 보여야 한다. 그 변론을 빠르게 늘어놓는 것을 막거나, 그 시를 짓고 나서 잰 체하는 것을 꺾거나, 글 짓는 자리에서 내치거나, 묻고 답하는 즈음에 싸늘하게 대하여서 두려워 반성하여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고도 오히려 꾹 참아 고치기를 바라는 것, 이 또한 선을 권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같은 사람은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설령 분명하게 일러주더라도 반드시 이를 미루어 넓혀서 반성하여 고치지는 못한다. 오직 잘못이 쌓여 젖어들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 중간에는 성을 내고 마침내는 깨닫게 되는 것이 도리어 경솔함을 바로잡고 어리석음을 열어주는 단계가 되니, 널리 벗을 사귀려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갑에게 돌려서 깨우쳐주었으나 갑이 이를 깨닫지 못했다. 을이 곁에 있다가 이를 듣고 바로 갑을 위해 한 말인 것을 알았다. 을은 과연 갑보다 나은 것일까? 다른 날 을에게 돌려서 깨우쳐주었으나 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갑이 곁에 있다가 이를 듣고 바로 을을 위해 한 말인 것을 알아차렸다. 갑이 과연 을보다 나은 것일까? 자신에게는 어둡고 남에게는 밝은 것이 온 세상이 모두 그렇다. 나는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종종 친하게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의 인품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그 자신이 여러 사람의 가장 아래에 해당한다. 자주 친하게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의 문사(文詞)의 우열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그 글 수준이 여러 사람 중에 가장 아래에 있다.
-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수여난필속(睡餘瀾筆續)』중에서 발췌-
▲번역글 출처: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창고』,홍길주지음/정민외 옮김/ 돌배게 2006년
"여기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그를 겉으로는 정성스레 대하는 듯이 하면서도 속으로는 범범하게( 하찮게) 대한다면 저 사람은 내가 자기와 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이 진실로 어리석기는 해도 마침내는 내가 덕이 부족한 것이다."(홍길주, '수여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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